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인생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만나고,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들이 이별을 경험합니다. 이별은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익숙한 것들이 자신에게서 떠날 때 사람들은 공허함과 불안을 겪습니다. 편안함의 감정이 익숙함에서 비롯된다면, 불안은 분리를 경험할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게다가 불안은 슬픔, 고통, 그리움의 감정들을 동반하며 우리를 힘들게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가능하면 이별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이별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습니다. 성장 과정은 분리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생명체가 첫번째로 분리를 경험하는 순간은 어머니의 자궁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입니다. 그 후 출근하는 아빠의 손을 놓을 때, 엄마의 손에서 유치원 선생님의 손으로 옮겨질 때, 이사를 하며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질 때도 모두 분리가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성숙은 이 분리로 인해 발생하는 불안감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불안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은 회피하거나 거절하는 것입니다. 사실 안도감이라는 배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지만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는 성장 장애를 얻게 될 것이며 결국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이별을 명하고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남자들에게 부모를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심지어 제자들에게 행한 고별 연설에서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별할 때가 있고 이별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더 좋은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이 말씀을 들을 때 그 의미를 알고 있던 사람이 몇이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별을 힘들어합니다. 사랑했던 대상일수록 더더욱 그러합니다. 그런데 이별이 고통스러운 것은 헤어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상실때문이 아니라 현재의 그것이 전부라는 오해 때문입니다.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오늘의 이별은 감수할 만한 인생의 사건입니다. 방과 후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아이는 이른 아침 웃으면서 엄마의 손을 놓을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장례의 자리에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만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즉 언젠가는 다시 만난다는 뜻입니다. 영원한 이별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영원히 헤어진다고 생각하며 이별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을 영원히 잃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헤어짐으로 인한 슬픔이 인생의 다른 영역까지도 망치게 만드는 괴물이 되지 않으려면, 헤어진다는 현재가 아니라 다시 만난다는 미래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습니까?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그만두었습니까? 얼마나 슬프십니까? 그리움이 당신의 뼛속에 사무칠 것입니다. 쓸쓸한 바람이 뻥 뚫린 가슴벽을 헤집고 지나갈 것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이별해야 합니다. 과거와 이별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해야 합니다.
그 이별이 주는 고통을 어찌 해야 하냐구요? 그냥 감수하십시오. 당신의 손을 빠져나가는 상대의 옷자락을 그냥 놓아 주십시오. 그러면 그 떠난 자리에 그리움이 남을 것입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깨달음이 남을 것입니다. 이별의 아픔 뒤에 숨어 있는 성숙과 시작의 기회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이별은 당신에게 절대 축복입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