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나는 그 일을 떠안기가 싫습니다. 내 의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는 모든 일을 내가 생각하고 내가 알아보고 내가 선택하고 싶습니다. 자발성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지금 일어난 이 일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니라 정해져서 내게 주어진 일입니다. 나에게 한번도 양해를 구한 적도 없이, 미리 설명한 적도 없이 갑자기 일어났다는 것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하는지 아시나요? 그래서 나는 이 일을 할 마음이 아직 없습니다.

나는 이 일을 하기가 싫습니다. 이 일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가 원할 만한 그 어떤 것이 있다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억지로 책임을 완수한다 하더라도 그 끝자리에서 나는 보이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고생만 하다가 갔다고 몇마디 말만 할 뿐 나를 기억하지도 내게 감사하지도 않을 것이 뻔합니다. 내가 뿌린 씨앗의 열매는 그들의 것이 되겠지요. 이제껏 나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남을 위해 살 만큼 살았고, 다른 사람 좋아할 일을 했습니다. 그런 나에게 또 다시 그리고 내 전부까지 포기하면서 남을 위해 뭔가를 또 해달라는 것은 지나친 요구입니다.

나는 이 길을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이런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누구도 이해하거나 알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고 나만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겁습니다. 아니 감당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공평의 문제, 정의의 문제입니다. 내가 이 부담을 짊어져야 할 이유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요구합니다. 재고해 달라고. 죽을 만큼 힘든 이 마음을 헤아려 달라고.
이런 주장이 당돌하게 느껴지거나 항명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내 마음이 절박해서만은 아닙니다. 세상엔 간절하지만 속으로만 태우다가 꺼져가는 촛불이 얼마나 많은지요.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당신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이의 친밀함이 무례함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당신은 침묵하고 있습니다. 절벽에 부딪히는 느낌입니다. 소리를 먹어 버리는 거대한 골짜기 같습니다. 왜 이러십니까? 대체 왜 나를... 메아리가 없는 이유를 알겠습니다. 그 침묵의 의미는 달라진 게 없다는 뜻이겠지요. 내 생각 안에 당신의 생각을 집어 넣을 수는 없다는 뜻이겠지요. 힘들어도 하라는 뜻인 게지요. 진정 그런 것이지요?

아... 그렇다면, 그렇다면 나는...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겠습니다. 그것은 이 일에 내가 선택받았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더 이상 억지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스스로 가겠습니다. 시작은 내가 한 것이 아니지만 과정은 내가 감당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라도 나는 능동형의 삶을 선택하겠습니다. 그게 당신의 뜻인 것 같아서요. 주십시오. 하겠습니다.

내가 하겠습니다. 나의 자발성과 책임하에 끝까지 가보겠습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를 보는 것은 믿음의 몫이겠지요. 내겐 하나의 믿음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의 말이 아니라 당신을 믿는 믿음. 버림받은 게 아니라 선택받은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내 안에 남아 있어서 난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 길을 가보겠습니다. 십자가의 그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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