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 (유니온교회 원로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교환교수)

 한국의 문화수준이 무척 높아졌습니다. 화장실이 그걸 웅변으로 증거합니다. 만약 세계화장실 박람회라도 있다면 단연 최우수상을 받을 만합니다. 우선 깨끗합니다. 역한 냄새가 전혀 안 나고 오히려 은은한 향기가 풍겨납니다. 상당한 예술성이 있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옵니다.
   “아름다운 사람은 떠난 자리도 아름답다.”
그런 예쁜 표어도 대소변 보는 눈 앞에 붙어 있습니다. 미적 감각이 녹아든 작품입니다. 더 있습니다. 화장실을 들어서면서 분수대에서 졸졸졸졸 샘물이 흘러 떨어집니다. 물론 모든 화장실이 다 그런 수준이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같은 시범화장실이 있다는 건 무척 상쾌한 일입니다. 변 볼 일이 없어도 가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원래 화장실 곧 ‘예쁘게 꾸미는 곳’이란 이름은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닙니다. 한국말에서는 변소(便所)란 말을 써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뒷간 혹은 똥두깐이 아니던가요. 교회학교 어린이들을 가르칠 때 가끔, “예수님도 화장실에 가셨을까요”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즉각, “아니요”라고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함성을 지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화장실 이야기를 체험적으로 인용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은 채로 음식을 먹은 것이 발단이 되어 바리새인들의 항의를 받으신 때였습니다.
  “이 사람들아, 음식이 뱃속으로 들어갔다가 뒤로 나가니까 그건 사람의 몸을 더럽히는 게 아니지. 진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악한 생각, 적개심, 음란한 욕정, 도둑질 음모, 거짓증거, 허위비방, 중상모략 그런 것들이란 말이야.” (마 15:18-20. 의역)

  영국의 앵글로 색슨들은 예수 믿기 전에는 해적들이었습니다. 5세기에 기독교가 들어가면서 그들은 온전히 거듭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국제신사’라면 곧 영국사람들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화장실 입구에 신사(gentlemen) 혹은 숙녀(ladies)라고 붙여놓은 것은 그런 역사에서 유래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신사 숙녀의 종교입니다. 예수 믿으면 야만인이나 도적과 강도, 바람둥이와 창녀들,  마약쟁이와 도박꾼들도 신사가 되고 숙녀가 됩니다. 그것이 기독교가 가진 전도의 막강한 힘이라는 걸 만천하가 인정합니다.

  그런데 한국기독교가 자주 혐오스러운 사건들로 얼룩져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한도 끝도 없는 교회의 분쟁들, 성직자들의 음란과 도박과 교회재산 횡령과 폭력과 막말하기, 절간에 들어가 땅 밟기, 대통령 무릎 꿇리기, 극렬주의적 선교... 어떤 것은 성경에 근거도 있고 또 동기도 좋으나 때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성경에 있다고 해서 무엇이나 다 직수입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를 혐오스러운 종교로 만드는 것이라면 오히려 전도에 방해가 되어 지옥문만 크게 열어 놓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깊이 새기고 정말 정말 지혜롭게 처신해야 합니다. (고전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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