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성인이 된 여인은 어느 날부터인가 낯선 남자들의 시선과 감정의 공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오랜 고민끝에 그 중 한 남자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기로 하지요. 끝내는 그의 몸을 받아들입니다. 자신의 몸 안에 다른 어떤 것이 들어온다는 것은 거북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몸에 대해 이질감보다 친밀함을 느낀다면 그 전에 이미 마음으로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남성은 여인의 몸 안에 씨를 남겨놓습니다. 그 씨는 여성의 받아들임을 통하여 신비로운 과정을 밟게 됩니다. 바로 창조입니다. 아무것도 없음에서 생명이라는 있음의 단계가 시작됩니다. 남성은 들어왔다 나간 방문자이지만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유기체는 한참이나 둥지를 틀고 머무는 거주자입니다. 여인은 이를 위해 몸의 일부를 떼어 주어야 하고 거북함과 불편함을 겪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은 이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생명에 대한 생명의 힘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인은 점점 어머니가 되어갑니다.

새 생명은 아주 작은 세포에서 3.5kg의 거대한 몸체로 성장합니다. 그러면서도 생명은 성장과 변화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은 태로부터의 분리를 요구합니다. 어머니가 또 다른 고통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비단 해산의 고통뿐이 아닙니다. 생명이 머물던 자리가 남긴 허전함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계속 그 생명을 품어야 합니다. 다만 몸 안에서 품던 생명을 이제부터는 몸 밖에서 품어야 한다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몸 속을 불편하게 하던 아이는 본격적으로 마음을 아프게 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이 사실도 순순히 받아들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자신과 하나였던 어린 생명을 태로부터 분리하는 아픔을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마칠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오랫동안 그와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사실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때는 한없이 먼 사람으로, 어떤 때는 다시 몸 안에 들어와 있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가깝게 느낍니다. 아픔을 느끼는 것은 여전히 하나라는 증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둘이라는 증거입니다. 이같은 분리는 과정이며 한참 동안이나 지속되는 삶입니다.

마침내 어머니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아픔을 받아들여야 할 때를 맞이합니다. 자녀를 세상에 그리고 다른 이에게 넘겨 주어야 할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자녀는 갈 곳과 앞으로 함께 할 사람에 대한 관심에 쏠려 이제껏 머물던 자리를 돌아볼 마음조차 없어 보입니다. 감사나 미련은 더더욱. 어머니는 그런 자녀의 마음을 말없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배신감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어머니는 그 단어를 결코 쓰지 않습니다. 이해와 기다림이라는 표현만 있을 뿐입니다.

분리의 과정이 막바지에 이르게 되면 어머니는 마침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마지막은 누군가의 죽음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게 분리는 영원히 떠나보냄이 아닙니다. 잊음도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분리의 끝은 다시 가슴속으로 받아들임입니다. 어머니가 떠나보낸 것은 자녀에 대한 바람과 자녀를 위한 집착이었을 뿐입니다. 어머니는 이제 자녀 그 자체를 다시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도록 절대 품안에 간직합니다. 영.원.히.

그 어머니가 미치도록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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