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영(위스칸신)

십오 년 전, 한국을 떠나오면서 그 동안 키운 화분들을 친구들과 교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언니에게 주었습니다. 청량리 미도파 백화점 가는 길목, 허술한 화원 구석에서 찾아낸 그 화분은 8개월만에 나와 헤어졌습니다.
한여름 깨진 화분들 속의 바짝 타들어간 흙 위에 작은 꽃을 피우고 있었던 그것은 분명히 선인장이었습니다. 다른 선인장과는 달리 가시가 두드러지지 않았고 도톰한 잎사귀를 달고 있었으며, 그 사이로 팥알 만한 빠알간 꽃이 보였습니다. 주인은 헐값에 그 화분을 내게 주었습니다. 버려질 뻔한 상황에서도 꽃을 달고 나를 맞아준 것이 애처로워 정성을 기울여 돌보았습니다.
이삿짐에 넣지 못해 언니에게 주고 온 그 선인장은 한국을 생각할 때마다 떠올랐습니다. 작지만 막 물이 제대로 올라 꽃을 새롭게 피워낼 무렵이었기에 그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5년쯤 지나 교회 아이들과 고국방문단에 끼어 서울에 갔을 때, 그 선인장은 내 허리 높이보다 더 키가 커서 우람해 보였고, 잎사귀 사이로는 똘똘해 보이는 꽃들을 수도 없이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너무나 반갑고 기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 짐을 풀다가, 물 먹인 탈지면에 뚝뚝 끊어진 선인장 줄기 세 개가 묶여 있는 비닐봉지를 발견했을 때, 얼마나 놀라고 언니가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안타까워하는 내 모습을 본 언니가 절대로 가져갈 수 없다고 다짐을 주었음에도 몰래 집어넣은 것입니다.
꾸물거리며 사흘을 보내고 미국의 흙으로 화분을 채운 다음 잎이 조금 시든 선인장을 심었습니다. 제대로 살아날지 마음 졸이는 동안 시간이 흘렀습니다. 기후도 다르고 물도 바뀌고 돌보는 손길도 다른데, 무엇보다 낯선 흙에 적응할지 걱정이었습니다. 아마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오직 흙과 줄기만 아는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잎사귀와 작은 가시 모두 뿌리를 새로 내리기 위해 온힘을 기울였을 것입니다.
마침내 선인장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잘 자랐습니다. 한겨울 추운 때 잠깐 쉬고는 일 년 열두 달, 꼭 그 모습으로 단정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이사갈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넉넉히 떼어 주었는데도 계속 힘있게 자랐습니다. 나누어 받은 사람들도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는 소식을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가운데 줄기가 소나무 껍질처럼 단단한 고목이 되었습니다. 그 고목의 틈새에서도 또 다른 새 잎들이 돋아났습니다.
가끔 두 교회가 합친다는 신문의 뉴스나, 그런 계획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는 자연스레 그 선인장을 떠올리곤 합니다.
잘린 줄기가 미국 흙 속에 심기듯이, 지난 생활에서 뚝 끊어진 것 같은 부분이 각자 있을 것이며,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어색함이나 불편도 있을 것입니다. 그 불편은 엇비슷한 교회 풍습일 수도 있고, 사소한 의견 차이일 수도 있으며, 그 동안 두 교회가 살아낸 확실하게 다른 계산법일 수도 있습니다. 설교 스타일도, 주방의 관습도, 예산 책정 방향도, 세상 속에서의 취미 생활도, 생활 수준도 눈에 띄게 다를 수 있습니다. 어쩌면 흔히 사용하는 언어나 이해의 방식에도 차이가 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흙과 선인장 줄기가 어우러졌듯이 돌보시는 하나님의 손길 아래, 주님을 모신 지체들답게 조화를 이루며 화목을 다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화분에 쉬임없이 물을 주고 정성을 기울였듯이, 첫 마음을 지닌 채 기도의 협력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잎과 줄기가 싱싱하게 자라 꽃을 피웠듯이 아름답게 성장하길 기원하게 됩니다. 나누어 주고 떼어 주어도 새 잎이 지속적으로 솟아났듯이, 합친 후에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팽창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흙처럼 꽃처럼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기도드리게 됩니다.
우리는 모르는 고통을 겪으면서 줄기가 화분 속의 흙에 뿌리를 내렸듯이 힘들고 피하고 싶은 아픔이 있을지라도 말씀을 양분 삼아 튼튼하게 뿌리를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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