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인생에서 목표가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표는 에너지를 집중하게 만들고 삶을 단순하게 만들며 가슴에 열정을 갖게 합니다. 목표는 목표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목표 아닌 것들을 무시할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목표에 빠져들면 사람들은 다른 것을 보질 못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매우 중요한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표가 잘못되었을 때 즉 잘못된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 나타납니다. 잘못된 목표라 할지라도 그에 집중하는 사람은 다른 것을 보려 하지 않습니다. 그 때문에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것을 놓치기도 합니다. 그 소중한 것이란 바로 사람입니다. 관계입니다. 생명입니다.

어떤 것도 생명보다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그 목표 달성의 고지에는 생명과 사람 그리고 친밀한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것이 배제된 목표라면, 목표 달성을 통해 손에 쥐어진 것에 생명이 없다면 이제까지의 도전은 실패를 위한 헛수고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는 말해 주어야 합니다.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생명이 배제된 목표는 참된 목표가 아니라고.
그 역할을 하는 사람은 평소에도 신중하고 사람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 사람은 바로 잘못된 목표때문에 밀려나고 버림받은 그 당사자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예수를 향해 두 번씩이나 간절하게 부르짖으며 자비를 구했던, 나면서부터 눈먼 두 사람이 바로 그들입니다.

사람들은 눈 먼 두 사람이 도움을 요청하자 큰 소리로 그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그들은 온통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엄청난 사건과 그로 인해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에 관심을 쏟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에게 절규하는 눈먼 자는 귀찮은 대상이었고, 장애물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눈 먼자들은 끝까지 장애물로 취급당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간절함이었습니다.

결국 그 간절함이 예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사람들의 구박을 그치게 만들었습니다. 끝내는 예수의 심장에서 자비심을 불러일으켜 치유의 기적을 경험하게 되지요. 예수는 알고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예루살렘에 함께 들어가야 할 사람들이라는 것을.

효율성과 속도, 기능주의에 젖어 살다보니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눈에서 사람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대신 돈이 보이고 도구가 보이고 기능이 보입니다. 그가 내게 얼마나 필요한 사람인가를 계산하는 데는 빠르지만 그가 나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뒷전입니다. 이런 비인간적인 사회에 도덕적 인간상을 회복하기 위해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역해야 할 방향이기도 합니다.

무시당하고 버림받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열정과 환호성이 자신과 얼마나 많이 동떨어진 평화(살렘)인지를 잘 알 것입니다. 그들만의 성공을 자축하는 파티,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권세가 얼마나 공허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말해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는 어떤 목표도 참된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어떤 열정이라면 결코 참된 성취감을 가져다 줄 수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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