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난 후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볼까요? 혼자서 승강기에 오른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내려야 할 곳에 해당하는 버튼을 누르고는 고개를 숙이거나 초점없이 어딘가를 바라봅니다. 어떤 의도적인 행동을 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렇다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흐릅니다.
“땡”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립니다. 타고 있던 사람은 자동적으로 몸을 앞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곧 거기가 자기가 내릴 곳이 아님을 알고는 급히 몸을 되돌리지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 보는 일상의 한 장면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누구나 갖는 자기중심적인 생활태도를 보여주는 예라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어떤 생각에 잠기면 우리는 타인의 존재와 그들의 어떤 행동의 가능성에 대해 의식하지 못합니다. 탑승자는 그 건물에 수많은 층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모든 층마다 사람이 탈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모든 층에서 사람이 내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잠시나마 잊습니다. 그의 머릿속에는 자기가 입력해 놓은 내려야 할 곳에 대한 생각만 가득하고 땡 소리는 바로 그것을 위해서만 울린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생각과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은 사실 착각이며 욕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착각과 욕심을 가지고 삽니다.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 착각이며, 소망이 아니라 욕심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질서와 환경을 재구성하려고까지 합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이가 바로 자기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변화되어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자신입니다. 이 말은 적어도 세상의 중심이 그 사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의 중심은 누구일까요? 타인이라고 표현되는 세상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도 세상의 주인은 아닙니다. 갑자기 혼미해진다구요.

그렇습니다. 이 대목에서 사람들은 길을 잃어 버리기 때문에 불안해지는 것이고, 그 불안을 이기지 못해 다시 자기 중심으로 회귀하려 합니다. 어차피 혼미하다면 자기 중심의 공간에 안주하는 것이 불안하게 사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이제 진실을 확인해 볼까요? 세상의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보이지 않고 보통의 감각으로는 느낄 수도 없는 모양으로 존재하는 그분. 모든 것 안에 계시며 모든 것 위에 계시는 그분.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이들이 이 사실을 인정할 때에야 세상은 비로소 질서를 찾게 될 것입니다. 그런 날이 올까요? 만물이 그분의 중심되심을 인정하고 자기 중심의 벽을 무너뜨리는 그런 날이 올까요?

이 불가능해 보이는 비전이 우리가 끝까지 품고 추구해야 할 소망입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품고 이를 위하여 달려가는 순간에만 우리는 행복할 것입니다. 인간은 꿈을 이루었을 때가 아니라 꿈을 향해 달려갈 때 비로소 자기를 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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