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외출을 하려고 사무실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고 있을 때였습니다. 계단 창가에서 이야기를 나누던 자매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습니다. 답례를 하며 자세히 둘을 바라보던 저는 그 중 한 사람이 아주 오랜만에 보는, 그리고 매우 가까웠던 사람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며 제 업무를 많이 도와 주었던 신실한 자매였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요.

상대 역시 뜻밖의 만남에 반가워하면서도 어떻게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과거의 수많은 일들이 번개처럼 지나갔습니다. 그 과부하를 버겁게 소화해내며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저였습니다. 그런데 “어~어! 안녕하세요”다음에 내 입에서 나온 인사는“요즘 어디에 있어요?”라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그 질문은 어디에 사느냐는 의미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는 뜻이었지요. 말하고 나서 금세 아차 싶었습니다. ‘몇년만에 만나서 하는 첫 마디가 이 말밖에 없었을까?’ 그러고 보니 요즘 내가 사람들을 만나서 가장 많이 물어 보는 말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이게 내가 사람들에게서 가장 알고 싶은 것일까?’

자매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답할 말을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는 겸연쩍게 “그냥 지내요”라고 미소지으며 말했습니다. 내 질문에 바로 답할 상황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뒤늦게 신학교를 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아직 사역지가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순간 나도 당황하여 분위기를 바꾸며 말했습니다. “이런 질문 받으면 어색할 때가 많지요. 허허허!” 오랜만의 만남은 그렇게 애매모호한 대화로 끝나 버렸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무얼 하는가에 대해 관심이 참 많습니다. 동창이나 신학교 동문 목회자의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한결같이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질문합니다. 당연하고도 애정어린 관심사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어디’와 ‘무슨 일’에 대한 평가기준이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좋고 나쁨을 단정짓고, 그 결론으로 상대의 인격과 삶의 성공 여부, 존재 가치를 동일시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이는 한 술 더 떠서 어느 동네에서 사느냐로 그 사람의 수준과 교제 여부를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요즘 무슨 일을 하느냐”고 질문하면 즐겁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게다가 질문 받는 사람이 현재 이런저런 사유로 하던 일을 멈추고 때를 기다리는 중이라면 그런 질문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 수치심과 열등감을 갖게 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런 시선과 질문이 부담스러워 점점 사람들을 피하려고 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직업과 직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이 배려 아닐까요?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후회했습니다. 실은“만나서 너무 반갑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그때 잘 도와 주어서 늘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등의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 다음“그때 가족 때문에 많이 고생했던 걸 기억하는데 지금은 다들 잘 있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What do you do?보다는 How are you? 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순서가 바뀌었을까요?

여러 이야기를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해 봅니다. 그렇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실체가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내면의 세계와 가치를 파악할 능력이 없기에 외형적인 직업과 일의 내용에 더 많이 관심을 갖는 듯합니다. 인격(personality)을 알 수 있는 안목이 없기에 일(work)로 판단하려고 합니다.
물론 인격과 일은 동전의 앞뒤와 같습니다. 또 목적을 가지고 태어난 이상 우리는 일해야 하고 우리가 하는 일의 내용은 결코 우리의 인격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격이 우선이지 일이 먼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일을 하지 않았을 때에도 우리를 보시고 좋아하셨으니까요. 존재에 관해 우선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성경적이며 인간적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수소문해서 연락처를 찾아 못다한 인사를 하려 합니다. 그냥 만나기만 해도 좋은 사람인데 묻지 않아도 될 말을 괜히 했다는 생각입니다. 아니 하더라도 그렇게 급하게 물어볼 말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더더욱 분명해집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