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우유부단한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입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에 결정을 두려워하고 대인관계에서도 소극적입니다. 반대로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태도를 갖는 사람은 자신감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이 어떤 모임에서 리더십을 갖습니다. 업적도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자신에 대해 긍정하는 태도는 그 사람의 잠재력과 추진력을 극대화하는 데 유익합니다. 그래서 많은 자기계발 프로그램에서는 자신감을 심어 주는 심리요법과 행동요법을 소개합니다. 자기격려와 자기 긍정의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주입합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하거나 자기 결정에 대해 회의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버려야할 습관입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을 과신하거나 잘못된 자신감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경우입니다.

지나친 자신감은 타인과의 공존을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의 판단과 해석을 절대시한다면 타인의 반론과 속깊은 사연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후시경이 없는 자동차처럼 앞으로만 나아가겠지요. 자기 긍정에서 자기 과시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면 타인의 존재 자체를 싫어합니다. 이런 사람은 모임에서 다른 사람에게 기선을 빼앗기는 것조차 못 견뎌 합니다.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되는 일이 없겠지만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이 많으면 분쟁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분쟁을 적절하게 조절할 장치나 능력이 없으면 마주 달리는 열차의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결국 열차는 충돌하게 되고 되는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인 현상이 일어납니다. 지금 한국의 정치,사회, 종교, 교육의 모든 현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해법은 없을까요? 한국사회에서 존경받고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 모 대학교수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라 했습니다. 틀릴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더니 생각대로 될 수도 있습니다. 그땐 이렇게 말하겠지요. “정말 틀렸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땐 이렇게 말하겠지요. “그것 봐. 네가 틀렸잖아!”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 보는 것은 이후에 일어날 사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복선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기 위해 잠시 몸을 낮추는 전략도 아닙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암시하면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난다는 실험도 아닙니다.

이 말은 틀려서는 안 되지만 성숙한 사람이라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쯤 가져 봐야 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오스 기르니스의 책 제목을 빌린다면 ‘회의하는 용기’라고나 할까요? 그 생각이 중요한 것은 ‘주의깊게 듣기’라는 성숙한 태도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회의는 경청으로, 경청은 온전함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게 본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보다 완전한 결론을 향한 참여로의 초대입니다. 자기 부정을 통한 긍정의 추구라는 점에서 성경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았던 위대한 이들의 변화는 모두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였고, 잊고 있었던 민족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더럽다고 생각한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베드로에게 성령의 음성이 들렸고, 그의 눈에 이방사람 고넬료가 보였습니다.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은 실험가로 하여금 또 한번의 실험을 더 하게 만들고, 도예가는 이미 만든 자기를 깨트립니다. 그 과정의 반복을 통해 완전한 작품, 위대한 제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런 태도를 갖기가 어려울까요?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하나에도 와르르 무너질 정도로 자신감의 기반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사회에서 낙오되고 자신의 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요? 그 교수는 다른 자리에서 ‘실수도 용납하는 사회, 실수한 사람에게도 다시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들어야 할 좋은 충고이지요?

문득 하나님 생각이 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틀릴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분, 틀렸다고 결론이 난 일에 대해서도 또 한번의 기회를 주는 분이셔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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