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 (유니온교회 원로목사, 서울신학대학교 교환교수)

교회에도 상 주는 일들이 많습니다. 성경퀴즈대회, 성경암송대회, 가족경창대회, 성경일제고사에는 언제나 시상이 따릅니다. 운동회를 하면 청백전을 벌인다 해도 단체상을 주어야 합니다.  행여 골프대회라도 하게 되면 상의 이름이 제법 많습니다. 장타상, 근접상, 홀인원상, 대상 같은 것들 말고도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 시상합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심지어 총동원 주일이나 새 생명 축제 같은 전도행사를 하게 되면 상금도 큼직큼직합니다. 제일 많은 사람들 데려온 사람에게는 한국왕복 비행기표가 상품으로 내걸리기도 하고, 혹은 자동차 한 대를 교회 앞마당에 세워 놓은 ‘간 큰 교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상의 후유증이 크다는 데 있습니다. 일단 시상을 하고 나면 모든 성도들이 사심 없이 상 받은 이들을 축복하고 박수를 힘껏 쳐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상만 주었다 하면 뒷말이 무성하게 되니까 신경이 상당히 쓰입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때 구역별 동원상을 주었던 교회에서도 그런 홍역을 치렀답니다.
  “은혜 받겠다는 기도를 하고 가도 부족할 터인데 상 받을 생각만 굴뚝같이 하고 간대서야 말이 되는가.”수상자 명부에 들지 못한 구역원들의 불평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답니다. 일리가 있기는 합니다만 그냥 넘어가는 것이 더 덕스럽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으라고 했는데...”(히 11:6). 담임목사는 혼자 그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시상의 부작용은 늘 있는 것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넘기면서도 여전히 신경이 쓰였습니다.
  성경일제고사때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성경시험인데 그때 그때 범위를 정하여 예고합니다. 간단하게 대답할 수 있는 문제를 25개 출제해서 주일예배 시간에 시험을 치는 것인데 7분 정도면 마칩니다.
  “학교 다닐 때에도 일제고사라면 골치가 지끈지끈했는데 교회에서 무슨 일제고사입니까?”그런 말을 남겨놓고 두 가정이 교회를 훌쩍 떠났습니다. 시험에 참가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했고 점수는 비공개라고 미리 말해 두었는데도 그런 불상사가 생겼습니다.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그런 일이 있고 나서 이런 경고의 말씀이 귀를 맴맴 돌았습니다. 그래서 부작용을 줄이려고 여러 가지 지혜도 내보았습니다. 모두에게 조그만 상이라도 주려고 참가상을 마련했습니다. 이름만 일등 이등이지 상품은 똑같은 것으로 했습니다. 담임목사의 가족은 아예 시상후보에서 이름을 싹 빼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상 주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친히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 5:12) 하셨고, 마지막 날에도 상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 22:12). 그래서 이런 기도를 합니다.
  “주님, 그때에 우등상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받게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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