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치유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근본적인 치유는 무엇보다도 죄책감의 치유라 할 수 있다. 죄책감으로부터의 치유는 우리 인생을 진정으로 자유롭게 만들어 준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보물이나 소유, 건강, 명예, 아름다움보다도 더 소중하고 우리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 받은 자유이다.

시편기자 다윗은 시편 33:1에서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자야말로 ‘복 받은 자’라고 선언하고 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예수께서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하신 말씀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알고 믿고 나아가 그가 흘린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죄를 용서받는 진리를 아는 자는 자유함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죄를 용서받고 사는 자가 진정으로 치유받은 자요, 행복한 인생이다.

오늘날도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몰몬교 등 인간이 만든 종교에 속한 사람들은 죄를 씻고 죄책감의 용서를 받기 위해, 죽은 후 다음 세상에서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선행 및 고행과 함께 그들 종교의 거짓 교리와 법을 지키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러나 비극은 하나님이 주신 죄의 해결책을 통하지 않고는 그들의 방법으로는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를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오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일평생 죄와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정서적인 고통과 불안과 형벌의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이다.

문제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죄와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교회 출석하고, 봉사를 열심히 하고, 헌금생활 잘하고, 직분을 맡아 수고하고, 열심히 기도생활을 한다고 저절로 죄와 죄책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많은 신자들이 이전에 행했던 인간이 만든 종교 생활로부터의 습성 때문에 교회에 와서도 동일한 방법으로 업적 쌓는 일을 열심히 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죄 용서와 죄책감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결코 치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이 근본적으로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는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없다면 죄 용서도, 죄책감의 치유도 없다. 살아계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 나의 하나님, 나의 영원한 주인으로 모시는 일부터 해야 한다. 즉 천지 만물과 인생의 창조주요 주인이시고 하나님이시며, 성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인생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인생의 모든 시험과 유혹을 경험하시고 죄로부터 승리하셨고, 채찍질 당함과 고통의 가시관 쓰심과 고난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나 대신 나의 모든 죄를 십자가 위에서 담당하시고 죽으셨으며, 부활하여 영원한 나의 왕, 나의 구세주가 되심을 인격적으로 고백하고 내 마음의 왕좌에 주인으로 모시는 일부터 분명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앞에 날마다 나아가고, 인격적인 교제의 삶을 사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것 없이 죄책감의 치유는 없다. 다시 말해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죄책감의 치유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예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의 확신이 없다면 목회자나 상담자나 주변의 신실한 신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모시고 관계의 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중요하다.

둘째, 하나님 앞에 나의 죄를 구체적으로 자백해야 한다. 생각나는 모든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말로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도 되지만, 구체적으로 종이에 기록하고 하나씩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였음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생각나는 모든 죄들, 거리낌 있는 모든 것들, 양심에 가책이 되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용서해 주시기를 진심으로 간구해야 한다.

두루뭉술하게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 구체적으로, 진실하게, 정말 아픈 마음으로 잘못을 고백하며, 잘못한 대상이나 잘못한 일에 대해 사람들에게도 기꺼이 용서를 구하며 배상까지 하겠다는 마음 자세로 고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영화 ‘밀양’에서 유괴범이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았다고 하면서 정작 피해자에게는 진심어린 용서를 구하지 않는 뻔뻔함을 보였을 때, 피해자는 더 고통스러워하며 분노하고 있으며, 하나님 앞에서만 용서를 구하고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것은 가증스러운 짓임을 폭로하고 있다. 진정한 회개에는 자신의 잘못을 아파하고 구체적으로 하나님과 피해자 앞에 눈물로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 손해를 보상하고, 필요한 모든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는 것이 포함된다. 구체적인 자백 없이 죄책감의 치유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죄 용서의 확신을 가질 때 죄책감의 치유는 완성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데까지는 가지만, 확신을 갖지 못해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반복해서 고백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매일(?) 고백하기도 한다. 죄 용서의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들을 몇 가지 살펴 보자. 아무런 아픔 없는 형식적인 회개,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보상을 기꺼이 하려는 마음이 없는 회개, 용서의 말씀-약속의 말씀을 분명히 믿고 선포하는 과정이 없는 회개는 확신을 주지 못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감정적으로 용서받았다는 시원한 느낌(?)이 없고 계속 마음이 찜찜하고 죄가 생각나기 때문에 용서받지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진정으로 회개하는 바른 자세와 감정뿐 아니라 말씀을 통해 죄 용서의 확신을 갖는 것이 죄책감의 치유에 필수적이다. 시기와 질투 등 마음의 죄와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든 죄를 진정으로 고백하고 구체적으로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9)라고 분명히 약속하셨다. 약속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선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할 때 하나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너의 죄를 멀리 옮겼다” “흰 눈같이, 양털처럼 희게 하였다” “죄를 기억지도 않는다” “죄를 도말했다(깨끗이 지웠다)”등의 표현으로 나의 죄를 용서하셨음을 수없이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진정 회개했다면 약속의 말씀을 믿고 용서받았음을 선포하고 확신하라. 그리고 죄에서의 자유를 누리라. 계속 정죄하는 사탄을 대적하라(하나님이 이미 용서하셨다고)! 하나님의 용서는 영원하다.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고, 송사할 자도 없고, 정죄할 자도 없다(로마서 8:31-34).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최후의 심판자가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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