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교회)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수가 1백3십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농촌엔 4가구당 1명꼴로 외국인 며느리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과 한국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농촌학교마다 적지 않다고 하니 이젠 더 이상 한국을 단일민족국가라고 할 수는 없는 듯합니다. 그들이 한국에 온 목적이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라고 하니 정말 한국이 잘 살긴 잘 사나 봅니다. 역사상 지금처럼 부강할 때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비록 학문적인 결론은 아니지만 정서적으로으로 맞는 이야기인 듯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긍지를 높이는 말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면서 그들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유입되었습니다. 또 외국에 나가 살던 동포들이 고국으로 돌아오거나 왕래가 잦아지면서 이국적인 사고와 습관들도 쉽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인터넷과 교통수단의 발달은 지구촌을 더 좁게 만들었지요. 그러면서 생긴 새로운 단어가 이른바 ‘다문화사회’라는 표현입니다. 꼭 미국이 아니어도 이태원이나 안산도 ‘인종전시장’이라 부를 만합니다. 전철을 타면 한두 사람은 꼭 외국인이고 영어나 일본어가 아닌 외국어를 어렵지 않게 길거리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도 전보다는 많이 개방되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독일계 한국인이 관광공사 사장의 자리에 앉았고 탈북자 출신이 정부출연기관의 소장이 되는 것이 그 예입니다. 하지만 북미나 유럽 출신의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와 중앙아시아나 동남아시아 출신 외국인들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를 보면 아직은 더 성숙해져야 할 부분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아직 영어를 쓰고 피부색이 하얗고 잘 사는 나라에서 온 외국인을 지나치게 편애하는 경향이 강하니까요.

다민족 다문화를 경험하면서 얻는 교훈이 적지 않습니다. 가장 큰 것은 나 중심의 세계관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생활할 때도 느낀 것이지만 세상은 참 넓고 인종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리고 각사람들마다 고유의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선악의 관점에서 분명하게 유입을 차단하고 확산을 금해야 하는 것들도 있지만 말 그대로 다양성의 차원에서 보아야 하는 것들도 참 많습니다. 인정하고 존중해야 할 것들이 다른 사람, 다른 민족들에게 얼마나 많은지요.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도 큰 교훈입니다. 가끔 TV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 나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 재외동포들이 현지국가의 법적, 문화적 차별에 의해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야기를 방영할 때가 있습니다. 내용을 설명하는 아나운서는 분노의 감정을 그대로 섞어가면서 현지국가들의 태도와 법규정들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해 한국사회가 보인 행동은 그보다 훨씬 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뭐 묻은 개’임을 알게 된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자기발견입니다.

다문화화, 세계화 등의 현상은 이 시대의 현실이고 우리를 보다 넓은 마음의 소유자로 부르는 초대임이 분명합니다. 적어도 우리의 자녀들에게는 폐쇄적이고 독선적인 잣대로 이방인을 폄하하고 이용하는 모습을 물려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백인들에게는 우호적이면서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들은 무시하는 이중적인 태도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만고불변의 진리도 아닌 것을 단지 우리의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집부리며 지키려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현상의 대부분은 불행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졌던 민족적 방어기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열등감이 강했기에 교만했고, 두려움이 많았기에 배타적이었던 모습들 말입니다.

이제 진정한 세계인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세계인으로 사는 것일까요? 미국에서 사는 한인 1세들이 자녀의 친구들을 보면서 “쟤는 어느나라 출신이니?”라고 물으면 2세들은 이상하게 여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제 한국인이냐 중국인이냐, 한국식이냐 일본식이냐는 더 이상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의 벽을 뛰어넘어 진리에 속한 자인가 아닌가, 진리의 교양을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가 더 중요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아니 이미 되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요한 것은 한국인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 사느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모든 문화, 모든 민족, 모든 세계가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리고 우리 자녀들이 급변하는 이 시대 속에서 가져야 할 진정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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