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적 치유 및 가족 성장 상담(73)

정서적(언어적) 학대, 육체적 학대, 성적 학대, 종교적(율법적, 도덕적 종교의) 학대, 차별적 학대 등 어떤 종류든지 학대를 경험하고 자란 사람들은 대부분 낮은 자존감(열등감), 무가치감, 수치심, 두려움, 죄책감, 우울감, 분노, 외로움 등의 정서를 갖고 살게 된다. 자신을 학대하던 사람들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또 상처받을까봐 피하고 도망가고 싶어 한다. 건강한 인간관계가 어렵고 늘 누군가가 또 상처를 주지 않을까 긴장 속에서 산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학대받은 모든 자들의 대표적인 정서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정서적 문제도 수치심과 두려움이다. 힘없는 자를 무시하고 배려하지 않는 권위자 중심의 유교문화, 일제문화, 군대문화 등의 영향으로 학대를 받지 않고 자란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의 군대문화가 얼마나 비인간적이고 악마적이고 사람들의 영혼을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고, 죽게 하는지, 속속들이 파헤쳐지고 보도되고 있지 않은가? 학대가 또 학대를 낳고, 대를 이어 악순환과 큰 고통과 상처를 주고 있는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지 않은가? 군대문화의 영향으로 정치판과 기업과 사회 곳곳에 동일한 일들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뿌리 깊은 체면문화도 사실상 수치심과 두려움 때문에 생긴 것이다. 더 이상 학대와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인정을 받기 위해, 남보다 더 소유하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뭔가 사람들이 인정하는 소유, 권력, 지식, 힘이 있어야 학대와 수치를 당하지 않기 때문에) 발버둥치고 목숨을 거는 민족이 우리 민족이다.
한국사람 대부분이 저질문화(약한 자를 무시하고 학대하는 문화)의  결과로 생긴 상처와 수치심으로 인해 정서가 건강하지 못하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본능적으로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며, 자기보다 힘세고 앞선 사람에게는 무조건 맹종하고 굴복하거나 시기와 질투심을 가지고 대하며, 험담과 비난을 통해 남을 끌어내리는 경향이 농후한 이유도 학대의 결과로 생긴 수치심과 두려움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민족문화의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교회 안에서도 체면문화와 권위주의와 율법주의 등이 판을 치고 있고, 성경적인 가치관과 문화가 아직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수치심과 두려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미숙한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세상에 미치는 영향도 지극히 미미하다. 교회 왔다가 상처입고 불신자가 되거나 타종교로 간 사람이 1천만 명이 넘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만큼 한국교회 구성원들인 신자들의 삶의 수준과 질이 낮고 성숙도가 높지 않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교회 바깥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수치심과 두려움의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변화와 성숙은 없다. 가정, 교회, 정치, 학교, 관공서, 기업 및 다양한 조직체 안에서 부모, 지도자들이 상처를 치유 받고, 건강한 정서를 가지고, 자기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약자들을 돌보고, 사랑하고, 섬기는 본을 보이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살지 않으면 우리 민족공동체의 변화와 성장과 성숙은 불가능하다. 그러면 수치심과 두려움의 치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첫째, 나의 영적, 정서적 치유를 위해 다른 사람이 나에게 심어준 수치심과 나 스스로 만든 수치심을 인정하라.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병든 마음의 치유를 위해선 학대로 인해 생긴 자신의 상처를 인정하고, 그 결과로 수치심과 두려움이 생겼고, 인간적으로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돈을 열심히 버는 이유가 가난 때문에 당한 학대와 수치심 때문이며, 더 이상 사람들로부터 수치를 당하지 않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아끼고, 베풀 줄 모르고, 수전노처럼 굴고, 심지어 남을 학대하면서까지 돈을 벌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을 정직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자기가 학대받은 대로 돈 없는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며, 돈을 자랑하고, 체면을 위해 돈을 뿌리고, 돈의 노예로 살아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데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이것이 이민자들 대부분의 삶의 모습이 아닌가? 믿는 자들도 예외가 아니지 않는가? 또 모든 세상의 움직임이 그와 같지 않은가? 하나님 자녀로서의 건강하고 선하고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은 찾아보기 어려운 세상이 아닌가? 정직하게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수치심과 두려움과 체면 때문에 해온 모든 일들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하나님 사랑 때문에, 예수님의 은혜 때문에 삶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수치심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솔직히 인정하면 정서적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며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기초가 생긴다.

 둘째, 하나님은 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수치심을 치료해 주실 수 있음을 믿고 도움을 요청하라. 하나님은 영혼육이 강건하고,  기쁨이 넘치고, 사명과 목적을 가지고, 사랑과 은혜를 사람들과 나누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러한 삶을 우리에게 주실 수 있다. 이 세상의 방식(약육강식)으로 사는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식(사랑과 섬김)을 따를 것을 결단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나의 과거가 어떠했건 하나님은 얼마든지 하나님 차원의 풍성한 삶을 주실 수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가 분명하다면, 날마다 능력과 사랑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친밀히 교제하고 대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삶의 한 걸음 한 걸음을 인도받으라. 시편기자 다윗은 천한 목동이요 형제 중 여덟째 막내로서 부모와 형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인정 받지 못했지만, 어려서부터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 속에서 늘 찬양하며 풍성한 영혼의 만족을 누렸다. 그의 찬양은 사울 왕을 귀신의 영향으로부터 자유케 할 만큼 힘이 있었으며, 비록 어리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모독하는 골리앗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평소 양을 돌보기 위해 갈고 닦았던 물맷돌 실력으로 당당히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그를 한방에 때려 눕혔다.   

 시편의 고백처럼 하나님과 늘 대화하고 교제하며 살았던 그는 무명의 천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본이 되는 신앙과 이스라엘 최고의 명문 가문(메시야의 가문)을 세우고 모든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수치심과 두려움을 던져 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하게 살았으며, 수치심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았다. 하나님을 ‘나의 방패, 나의 반석, 내 발의 등불, 내 길의 빛’으로 삼고 하나님과 함께 한 인생이었다. 내 삶 속에 숨어 있는 수치심과 두려움을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 내려놓고 치유 받으며, 날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속에서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는 독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아멘       

가족성장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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