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가 교통 경찰관에게 걸렸다. 경찰관이 친절한 목소리로 “과속하셨습니다.”라고 말하자, 운전하던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제가 술 한 잔을 했더니 정신이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경찰은 단호한 목소리로 “음주운전을 추가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운전자  옆에 있던 그의 아내가 “경찰 아저씨. 이 사람 아직 면허도 없어서 맨정신에는 겁이 나서 운전을 못해요”라고 말했다. 경찰관은 너무 놀라서 “무면허 운전을 추가합니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뒤에 앉아 있던 장모가 하는 말이 “거 봐라. 자동차를 훔쳐 타더니 오래 못 가지 않니.”

이처럼 우리는 늘 죄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어떤 누구도 죄와 상관없는 사람은 없다. 물론 세상에서는 죄를 짓고도 다른 사람에게 크게 피해를 주지 않거나 특별히 그 죄가 발각되지만 않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죄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교회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죄’라는 말이다.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의 귀에 교회는 참 살벌한 곳으로 들릴 것이다. 교회에 다니는 모든 사람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죄인이라고 부르며, 목사님들 역시 설교하면서 죄란 말을 빼먹지 않고 항상 사용한다. 정말로 무시무시한 죄인들만이 모인 곳이거나 아니면 괜히 겁을 주려는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죄의 값이 사망인 것을 분명히 믿는다. 따라서 멸망치 않으려면 죄에 대해서 확실하게 얘기를 해야 하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죄에 대해서 자꾸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죄라는 것이 무엇인가? 죄란 말의 어원을 구약 히브리어로 보면 “하타”라는 단어인데, ‘올바른 목표를 벗어나다’라는 뜻으로 해석이 되고, 신약 헬라어로는 “하말티아”인데 역시 그 뜻이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말이다.

신약이나 구약 모두 의미가 같다. 뭔가 벗어나는 것,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목표를 잘못 정해서 잘못된 것을 추구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것이 죄라는 말이다. 우리 인간이 처음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선악과를 먹음으로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하는, 혹은 그것을 먹음으로 뭔가를 기대했던 잘못된 목표를 아담과 이브는 세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목표를 실제로 행하여 죄라는 것을 범했다. 죄란 다른 것이 아니다. 잘못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따라서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죄이다.

따라서 우리들의 목표가 잘못 설정돼 있다면 아무리 열심을 내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오히려 문제가 되어 버린다. 차라리 가만히 두어서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데 더 열심을 내서 문제를 크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들은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장사도 열심히 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이민 생활에서 보란 듯이 성공해 보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런데 잘 되기는커녕 뭔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늘 엉망이 되어 버린다. 가정도 문제투성이다. 자녀들하고도 삐딱해져서 늘 불편한 관계가 계속된다. 사업도, 인간관계도 열심을 내어 제대로 해보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사회도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세계 경제가 말로만이 아니라 정말로 어려운 지경이 되었다. 경제에 대해서 좀 안다는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제대로 돌아가지를 않는다고 한다. 어떤 누구도 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제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혼란 속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왜 그런가? 왜 이 지경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가? 바로 우리 모두가 죄 된 인생이기 때문이다. 죄라는 것이 우리의 정확한 목표를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목표로 해서 살아야 하는지 방황하게 만들고 잘못된 길로 가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죄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이 죄를 빨리 벗어 버려야 한다. 잘못된 삶의 목표를 고집하지 말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을 따르며 주님께로 정조준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잊고 살 때가 있다. 주일에 교회에서는 분명히 우리의 신분,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잘 파악한다. 우리들이 성도이고 하나님의 백성임을 기억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모습을 잘 알고 기도하며 또 그렇게 행동한다. 그러다가 주일에서 멀어지면서, 교회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세상으로 나가고, 직장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 내 일을 하다보면 내가 누구인지,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를 따르는 사람인지를 다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일 우리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죄를 따라가면 죄의 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내 삶 가운데서 내가 무엇을 따라 갈 것이고, 누구를 주인으로 삼을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Steve Jobs라는 사람이 있다. 잘 아는대로 Apple 컴퓨터의 창시자이며 CEO이다. 그가 Apple 컴퓨터와 관련된 새로운 상품을 내놓기만 하면 모든 사람이 무조건 그 물건을 사느라고 아우성이다. 한때 회사가 어려움에 처했지만 바로 이 한 사람 때문에 다시 살아났다. 그런데 이 사람이 지금 췌장암 때문에 건강이 좋지 않다. 얼마 전 건강 문제로 잠시 병가를 내자 전 세계 주식시장이 폭락할 정도로 세계 경제에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Steve Jobs를 따르면 성공한다는 확신을 갖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서도 내가 누구를 따라가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그까짓 회사 하나도 이런데 영적인 삶에서 우리들이 누구를 따라가느냐는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나의 주인으로 삼겠다고 결심하면 그 다음에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이 바뀐다. 내 삶의 주인이 바뀌니까 싹 다 바뀌는 것이다. 내 삶의 가치관, 세계관, 그 전까지는 이렇게 사는 것이 나에게 최고라고 생각되었는데 이제 더 이상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내 주인이신 주님 마음대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내가 이제까지 맞는다고 생각하던 것, 내 눈에 가장 좋게 보이던 것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된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더 이상 세상에서 원하던 육신적인 복이나 성공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주님과 함께 하며 주님과 같은 마음을 품으며 살 것인지 여기에 모든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본래 죄의 종이었지만 예수님을 따르면서 의의 종으로 변화하여 죄로부터 영원한 해방을 누리게 된 것이다. 이제 엉뚱한 곳으로 과녁을 돌리지 말고 주님을 향해 정조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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