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15-19

허영진 목사

어디나 계시고 언제나 계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면서도 우리의 말버릇이나 생활습관은 하나님이 주일날 예배당에만 계시는 분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 엘리사 선지자의 말을 듣고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들어갔다 나왔더니 문둥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엘리사에게 한 가지 청탁을 합니다.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왕하 5:17).
나아만은 여호와를 섬기기로 결심했지만 먼 아람 땅에서도 잘 섬길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흙이라도 가져갈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 흙을 옆에 두고 예배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받아 주실 것 같았던 것입니다.
그럴 듯한 생각 같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일종의 미신입니다. 나아만은 여호와 하나님을 한 민족의 신, 또는 한 지역의 신으로 보고 그 땅의 흙이라도 가져가면 그 신이 혹 따라와 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상은 구약성경이 이미 타파해 버린 미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촉구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치다가 풍랑을 만나 죽을 뻔하고 할 수 없이 니느웨로 가서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왕과 백성이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했고 하나님은 심판을 보류하셨습니다.
여호와는 히브리인뿐 아니라 앗수르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사실을 밝혀 주는 이야기입니다.
주후 70년 로마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했습니다. 로마는 유대인의 반항심이 종교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했습니다. 성전이 없어지면 여호와 하나님도 없어질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은 없애도 하나님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민족이나 지역에 한정된 신이 아니고, 전 우주적 유일신이라는 히브리 사상이 기독교의 하나님 신앙의 기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첫 순교자 스데반은 자신을 심문하는 유대인들에게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신다”(행 7:48)고 선언했습니다.
이방인의 선교사 바울은 헬라의 지식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행 17:24,25).
수가성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요 4:19-24).
하나님은 특정 민족이나 지역의 신이 아니요, 예배장소나 예배형식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아예 건물이나 제도나 의식 같은 것을 내버리라는 말도 아닙니다. 주님도 그것들을 무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절기를 지키시고 성전 세를 내시고 성전예배에 참석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순서나 의식에 구애받지 않으십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이 예배드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는 나아만에게 선지자 엘리사는 꾸짖지도 가르치지도 않고 흙을 실어가게 허락했습니다. 엘리사는 그 흙이 아직 초신자인 나아만의 신앙과 예배생활을 자라게 하는 데 일정 부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이해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장소나 시간이나 형식에 얽매이는 분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예배드리기 위해 장소와 시간을 구별하고 규칙적, 지속적으로 참예하는 것은 그 심령을 하나님을 향해 여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여는 이곳에 그는 현존하십니다. 인간의 심령이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그곳에 하나님은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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