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 (미주성결대 명예총장)

한국선교를 위하여 평생을 헌신한 미국인 선교사 내외가 이제 90세를 넘어갑니다. 지금은 은퇴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먼저 치매환자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결혼했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잊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알지도 못하는 남자가 찾아와서 수작을 떠는 거야?”
   남편이 양로병원으로 방문을 가면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답니다. 그래도 남편은 아내의 평생헌신이 고마워서 거의 매일 양로병원엘 심방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서 그랬을까, 남편이나 아내가 치매에 걸리면 결혼은 해소되는 것으로 간주해야 된다고 미국의 팻 로벗슨 부흥목사가 주장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렇다면 재혼을 해도 된다는 거냐는 항의도 있고, 그것 참 시원하다는 박수도 요란합니다.
  어떻든 남편과 아내는 결혼식 할 때 선서한 그대로 “죽음이 서로를 나눌 때까지” 한 몸입니다. 설혹 치매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뇌수에서 지워버렸다 해도 결혼이 무효 될 수는 없습니다. 
 두 사람의 공동 작품인 자식들이 눈들을 똥그랗게 뜨고 있는데 어찌 한 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까? 부부가 재산을 자동적으로 공동소유하고 있는데 어찌 결혼이 무효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두 사람이 부부라는 걸 알고 있는 증인들이 구름떼처럼 많이 있지 않습니까?
  원시시대와 달리 부부가 공동운명체 곧 함생체라는 건 현대에 와서 더욱 더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은퇴한 뒤에는 비행기 사고로 죽으면 좋겠다는 말을 서로 합니다. 보상금을 많이 받아서 좋은 일에 쓸 수 있으니까요. 그것보다도 한 날 한 시에 하늘나라에 가게 되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부부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날아가는 운명함생체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도 그렇습니다. 운전대 잡은 쪽이 큰 사고라도 일으키는 날이면 부부가 함께 죽을 확률이 매우 높지 않습니까. 크루즈여행을 할 때에는 영화 ‘타이타닉 호’ 이야기를 빼어놓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부’라는 말 앞에는 ‘함께’라는 수식어를 더 많이 붙이게 되었습니다.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걷고, 함께 가고, 함께 자고, 함께 의논하고, 함께 결심하고,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찬송하고, 함께 염려하고, 함께 감사하고, 함께 중얼거리고, 함께 인터넷 하고, 함께 구경 가고, 함께 심방하고, 함께 쉬고, 함께 신경질 내고, 함께 죽고....참, 죽는 것과 묻히는 건 맘대로 안 되니까 희망사항일 뿐이네요. 기껏해야 합장해 달라는 유언이나 할 정도랍니다.
  그런데 주님도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함께 가자”고 하셨습니다. (마26:46). 겟세마네 동산에서 가장 심리적 고통이 크실 때였습니다. 부부처럼 함생체가 되자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님 안에 사는 그런 함생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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