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미주성결대 명예총장)

한 번은 어느 장로 내외가 기도를 요청해왔습니다. 큰 아들이 중학생일 때에 부모 따라 기도원에 갔는데 그 기도원장이 안수기도를 했답니다. “기도해 보니 이 학생은 장차 목회자로 예정되어 있네요. 예레미야처럼 모태 때부터 택정함을 입었습니다.”그랬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공부도 잘 안 하고 깡패 친구들과 어울리더니 고등학교도 중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왔는데 사업한답시고 술집에서 살다시피 한답니다.
  “성 어거스틴도 타락했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니까 너무 조급하게 염려하지는 마시지요. 다만 기도원 원장님의 예언은 참 예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셨다면 예레미야에게처럼 당사자에게 직접 알려 주실 터인데요?”그렇게 상담하고 안수기도하여 보냈습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그 청년도 오십 줄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릴 뿐입니다. 기도원 원장의 예언기도도 빗나갔고 저의 희망기도도 효험이 없습니다.

 이건 또 다른 사람 이야기입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청년이 신학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주의 일꾼이 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너무나도 또렷했기에 돈 많이 버는 직장도 버렸습니다. 그런데 학생전도사로 봉사하는 교회의 어느 처녀가 그 전도사와 반드시 결혼하라는 예언의 음성을 들었답니다. 그걸 학생전도사에게 먼저 말하지 않은 채 여러 신자들 앞에서 공개간증을 했습니다. 학생전도사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렇다면 결혼 당사자인 자신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그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마지못해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하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러자 우선 신학자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아내가 금식기도한 뒤에, “성령님께서 신학자의 길로 가지 말라”고 하신다는 예언 때문입니다. 그 학생은 신앙 체험과 합리적 사고능력 그리고 외국어 실력으로 보아 좋은 신학자가 될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사로 안수 받고 조그만 교회를 담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사사건건 이건 이렇게 하고 저건 저렇게 하라는 예언을 쏟아냈습니다. 심지어 설교본문과 제목도 정해 주었습니다. 목회자로서 전문적 훈련을 쌓았던 것은 별로 활용할 기회가 없이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아내의 한계 안에 갇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알려지자 얼마 안 되던 성도들조차 뿔뿔이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언제 사모님을 담임목사로 청빙했느냐”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성경에는 예언, 예언자, 선지자, 선견자 같은 말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을 개인의 운명감정으로 오용하고 남용하고 악용하기 때문에 기독교가 크게 저질화되고 있습니다. 그런 낱말들은 어서 속히 ‘대언, 대언자’로 바꾸어야 합니다. 성경의 예언이 개인의 운명을 감정하는 경우가 혹 있기는 하지만 원래는 인생의 기본 방향, 역사의 큰 방향을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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