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미주성결대 명예총장)

이십대 초반에 중고등학교 교사로 첫 부임을 했을 때의 일입니다. 청소년 교육을 통하여 자기를 실현하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부임한 대학 동창이 교장 선생님의 호출을 받았습니다. 얼마 뒤 교무실로 다시 돌아온 그는 무슨 분통이 터지는지 여러 선생들 앞에서 책상을 주먹으로 꽝 하고 내리쳤습니다. 그리고 얼굴이 시뻘개 있었습니다.

  “박 선생, 도대체 무슨 일이야?”
  동료교사들이 달려가서 물었습니다.
   “급훈을 제출하라기에 ? (물음표)를 달랑 적어 냈지. 그런데 그게 어떻게 급훈이 되느냐며 되게 창피를 당했어. 교장 각하께서, ‘결재 못하겠다’면서 다른 걸 적어내라는 거야. 무식해도 한참 무식하지. 인간의 모든 문명의 발전은 바로 그 물음표 하나에서 나오는 걸 모르다니.”

 그 친구는 독일어 교사였습니다. 철학에도 깊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후일 그는 독일에 유학했고 명망 있는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위대한 교사의 자질을 가진 사람인데 옹졸한 교장은 그걸 몰라 보았던 셈입니다.

신학이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주장한 학자도 있습니다. 폴 틸리히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으로 신앙의 본질을 풀어 봅니다. 신앙은 바로 다음 세 가지가 기본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첫째 질문: 당신은 당신 안에 영혼이 있다는 걸 믿는가?
   둘째 질문: 그 영혼을 관리하시는 분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확실하게 믿는가?
   셋째 질문: 그렇다면 당신은 지금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독교는 바로 이 세 가지 질문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습니다. ‘아니오’ 해서는 안 됩니다. ‘잘 모르겠다’고 해도 안 됩니다. ‘글쎄요’도 안 되고 ‘관심 없습니다’도 안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 위의 기도를 통하여 그 세 가지 질문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것도 일곱 기도 가운데 마지막 것 한 마디입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 23:46).

이 기도에는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 그 영혼은 하나님의 손에 맡겨 관리하시게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에게 영혼이 맡겨진 사람은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세 가지 질문에 대하여 ‘예’라고 대답하기가 쉽고도 어렵습니다. 영혼이 있다는 건 온 인류 99% 이상이 어렴풋이라도 믿습니다. 그 영혼이 지옥에 가지 말고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절반은 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처럼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십자가를 함께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목숨,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거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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