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영 목사(순복음시카고교회)

한국에서 전해 내려오는 민담이 있습니다. 거울에 얽힌 얘기입니다. 시골에 사는 선비 하나가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갔습니다. 과거시험을 치른 후에 한양 장터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만물상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참 신기한 물건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손거울이었습니다. 값이 비쌌지만 시골 촌구석에서 고생하는 아내에게는 안성맞춤의 선물이 될 것 같았습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를 찾았으나 김을 매러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잘 볼 수 있는 벽에 못을 박고 거울을 걸어 놓았습니다. 아내가 얼른 보고 기뻐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선비가 외출한 사이에 아내가 집에 돌아와 보니, 짐 보따리는 있는데 남편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방을 둘러보니 벽에 이상하게 반짝거리는 것이 걸려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들여다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 안에 예쁜 색시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갔던 남편이 과거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예쁜 색시 하나를 데려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가슴이 떨렸습니다. 분하고 억울했습니다.

남편 뒷바라지하느라 온갖 고생 다했는데 남편은 자기를 배신하고 다른 색시를 데려왔으니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했습니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들어와 울고 있는 며느리의 얘기를 듣고 놀랐습니다. 어떤 색시를 데려왔나 싶어 거울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예쁜 색시는커녕 바짝 늙은 할멈이 있었습니다. 아니 이 녀석이 할망구하고 바람이 났다니! 아들이 한심했습니다. 첩을 데려오려면 젊고 예쁜 색시를 데려와야지 다 늙은 여자를 데려다 어디에 쓰려고 하나? 한심한 아들을 둔 시어머니가 속이 상해 퍼질러 앉아 웁니다. 집안에서 통곡소리가 난다는 얘기를 듣고 들에 있던 시아버지가 헐레벌떡 들어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가 확인도 할 겸 거울을 들여다봤습니다. 거울 안을 들여다본 시아버지가 갑자기 넙죽 절을 하더니 “아버님, 안녕하셨습니까?” 인사를 여쭙더랍니다. 거울 속의 자기 모습이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와 꼭 닮았던 모양입니다. 거울이 없던 시대에 회자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만일 한 번도 자기 얼굴을 보지 못했던 사람이 처음으로 거울을 통해 자기 얼굴을 보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물론 처음에는 모두 놀랄 것입니다. 자기가 상상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거울은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비추어 줍니다.
‘거울’이란 그 원래의 용도 즉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여 고치기 위한’ 용도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뿐만 아니라 거울이 비추어 주듯이 우리의 눈을 열어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거울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자신을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과거의 나는 누구였나? 나의 뿌리는 어디서 시작되었나? 현재의 나는 누구인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내가 나를 알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Know yourself)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는 나를 볼 수 없습니다. 내 눈으로 내 얼굴이 안 보입니다. 내 능력이나 경험이나 지식으로는 나를 알 수 없습니다. 거울이 있어야 내 얼굴을 볼 수 있듯이, 나 아닌 다른 것을 이용해야만 나를 볼 수 있고,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때는 자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다음 죄로 말미암아 자기를 볼 수 있는 눈이 망가졌습니다. 판단능력이 사라졌습니다. 죄로 타락한 인간에게 맨먼저 찾아온 재앙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나를 모르니 깊은 죄의 수렁에 빠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추함을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 타락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사람에게 끊임없이 혼란과 방황이 계속되었습니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잃어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착각하고, 교만해지고, 자기중심적이 되고, 이기적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난 역사가 우리에게 거울이 됩니다. 즉 과거의 실패한 역사를 오늘의 경종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고사에 ‘전차복철(前車覆轍)은 후차지계(後車之戒)’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수레의 엎어진 바퀴 자국은 뒷수레를 위한 교훈이 된다’는 뜻으로, ‘앞사람이 실패한 전철(前轍)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거울을 오용하는 바보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유명한 명작동화 ‘백설공주’를 보면, 백설공주의 계모인 마녀가 매일 거울에 자기를 비춰 보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는 질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 마법 거울은 “당신이 세상에서 가장 예쁘시지요.”라고 대답했고, 그럴 때마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백설공주가 자라서 성년이 되었을 즈음, 어느 날 마녀가 똑같은 질문을 했더니 거울이 말을 바꾸어 “백설공주님이 가장 예쁘십니다.”라고 대답하는 바람에, 마녀는 미녀 랭킹 1위 자리를 재탈환하기 위하여 백설공주를 죽이려고 합니다.

원래 거울이란 자기 얼굴이 깨끗한지, 화장이 잘 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자신의 흠을 발견해서 그것을 고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이지만, 실제로는 마녀처럼 많은 사람들을 ‘자기도취증’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의 거울이 없어서 힘들고 자신을 모르고 방황할 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는 길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은 나 자신을 보게 합니다. 성경은 나 자신을 알고 깨닫게 하는 인생 거울입니다. 성경을  읽으면 내가 보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습니다(고전 10:12). 대개 넘어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을 과대평가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거울’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바른 판단, 정확한 진단을 내렸으면 이제는 그것을 고칠 줄 알아야 합니다. 거울을 통해 자기 얼굴에 때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도 씻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거울을 보고서 자기 얼굴의 화장이 잘못된 것을 발견했는데도 그것을 고치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 우리가 알 것은 흐르는 물에는 얼굴을 비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호수처럼 정지되어 있는 물에는 내 얼굴을 비추어 볼 수 있지만, 흘러가는 물에는 얼굴이 비쳐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민생활을 하면서 경제 때문에 힘들고 그래서 미래를 염려합니다. 너무나 변화무쌍한 세상에 살려고 하니 얼마나 힘들고 어렵겠습니까?

그래서 영원히 변치 않는 거울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고, 우리에게 힘을 주고, 격려해 주고 바른 길로 인도하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그 분이 나의 거울이 되었을 때 나의 길이 열립니다. 예수님을 깊이 믿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십시오. 오늘의 힘든 환경을 이기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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