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미주성결대 명예총장)

1965년 육군 제2훈련소에서 사병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동아일보> ‘남성코너, 여성살롱’이라는 칼럼에 제가 쓴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꽃씨를 뿌리는 마음,” 그리고 이어서, “남의 아내에게 쓴 편지”라는 글이었습니다.
  두 글 모두 독자들의 반응이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1천 통 넘는 편지가 군인막사로 배달되었고, 꽃씨 소포도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그 글로 인하여 부대장으로부터 꾸중과 칭찬을 동시에 받았지만 하여튼 그것이 전국적 미디어에 처음으로 선을 보인 칼럼이 되었습니다.
  그 뒤 유학을 마치고 서울신학대학교 전임강사로 있을 때 <조선일보>의 ‘일사일언’이라는 유명한 칼럼의 필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 당시의 교육계와 종교계를 빗대어 비판하는 글들이었습니다. “종교주식회사”라는 제목도 있었으니까요.
  삶의 터전을 미국으로 옮기면서 한국말 신문과 잡지에 계속하여 칼럼을 게재했습니다. 그러다가 ‘칼럼’보다는 ‘조각글’이라고 명칭을 달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 조각글이 햇볕을 보게 한 신문이 바로 <크리스천 저널>입니다.
  영어와 한국말이 복수공용어처럼 사용되는 오늘에 와서 칼럼이나 조각글이나 무슨 큰 차이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영어를 섞어 써야 더 ‘고상틱’해 보이는 풍조에 저항하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젊은 날의 객기였을까요.
  ‘조각글’을 쓰면서 기쁜 일도 많았고, 고통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죽여 버리겠다’는 폭언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격려와 간증이 훨씬 더 컸습니다. 그러면서 조각글 영토도 확장되어 갔습니다. 라디오 조각글, 티브이 조각글, 인터넷 조각글, 한 조각 인생론 등입니다. 게다가 ‘조각 설교’도 틈틈이 정리해 가고 있습니다.
  목회현장에서 은퇴하면서 또 하나 새로운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은 ‘조각 소설’을 쓰는 일입니다. 지난 3월인가, <크리스천 저널>에 “청년 예수 남몰래 방랑기”가 게재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글 읽고 독자 가운데 항의하신 분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 예수는’ 하고 1인칭으로 쓴 글이기 때문입니다. <서울대 기독교 총동문회> 홈페지 편집위원들도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일보> 인터넷 판에는 30회 가까이 뜨고 있고, 독자들이 평균 수준 이상으로 많다는 전갈입니다. 아직 악댓글을 받은 것은 한 건도 없습니다. ‘방랑기’를 처음 게재해 준 <크리스천 저널> 독자분들도 격려의 박수를 보내옵니다.
  그래도 누구 하나라도 오해하지 않도록 ‘청년 예수 방랑기’ 끝에는 ‘조각 소설’이라는 말을 가끔 붙여 놓습니다. 문학에서는 엽편소설이라고 합니다만 나무 잎사귀처럼 짤막한 소설을 말합니다. 아니, 그것보다는 상상력의 생산품이라는 뜻이지요.
   아무튼 조각글, 조각소설, 한 조각 인생론, 조각설교 등은 저의 글목회의 중요한 부분임을 독자 여러분이 이해하여 주시면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학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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