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미주성결대 명예총장)

에스더라고 하면 우리는 즉각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성구를 떠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어서 안이숙 선생을 생각합니다. 그분의 책 이름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처녀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혹독한 고통을 받았던 안이숙 선생은 그 책에서 자신이 겪은 절절한 일들을 간증으로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한국의 수많은 성도들을 감동시켰고, 그래서 후편으로 “죽으면 살리라”는 책도 출판했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그분이 “하늘 가는 밝은 길”로 들어섰을 때 장례위원회에서 저에게 추모사를 부탁해 왔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회였는지요? 그러나 사절했습니다. 그분을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는데 어찌 추모사를 하겠습니까. 그분이 소속한 로스앤젤레스침례교회와 제가 장로였던 나성성결교회가 불과 서너 블록밖에 안 되는 거리였는데도 말입니다. 그분의 얼굴을 힐끗이라도 볼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하기는 그래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안이숙 선생의 이미지가 항상 청순한 모습으로 저의 마음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 졸업하고 시골중학교에 막 부임한 스물두 살 음악선생님 같은 이미지입니다.

에스더의 믿음은 항상 ‘동정녀 마리아’ 같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마리아가 에스더를 닮았다고 해야 합니다만 영적으로는 에스더가 마리아의 ‘모형과 그림자’ (히 8:5)처럼 보입니다.
  “목사님의 설교 가운데 제가 제일 큰 은혜 받은 말씀은 바로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였습니다. 그때 그 말씀이 저의 가슴에 꽉 박혔습니다. 자녀들이 신앙생활에 태만하게 되면 ‘네가 기도하는 어머니 된 것이 이 때를 위함 아닌가’ 하는 음성이 들립니다. 봉제업이 어려워 이번에는 성가대 가운을 헌물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말씀 때문에 용기를 내었습니다.”
  지난 연말에 어떤 권사님이 그런 간증을 들려 주었습니다.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양부 모르드개의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 하는 말을 듣고 했던 대답입니다. 저도 젊었을 때에는 설교를 하면 통째로 성도님들 머리와 가슴을 꽉꽉 채워 주려고 혼신의 힘을 다 했습니다. 토씨 하나조차 정확하도록 야심차게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륜이 쌓이면서 한 설교에서 성경 구절 하나만 성도들의 영혼에 새겨 놓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권사님의 간증은 그것이 맺은 열매입니다.

  “모르드개를 통하여 ‘이 때를 위함이 아닌가’를 성경에 새겨 주신 하나님, 이 말씀을 설교 듣는 모든 사람 영혼 깊숙하게 기록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손가락이신 성령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그런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아무튼 모르드개나 에스더나 그 말 한 마디 남긴 것만으로 인생을 값지게 산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도 없이 많은 말을 해온 우리는 과연 오래도록 남아있을 말이 무엇 하나라도 있을까요? 아니, 어서 빨리 싹싹 지워 버려야 할 못된 말들만 마구 지껄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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