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영 목사(순복음시카고교회)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의 런던 대공습 기간에 있었던 일입니다. 한 아버지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폭탄 맞은 건물에서 달려 나왔습니다. 마당 앞에는 며칠 전 투하된 포탄 때문에 생긴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습니다. 가능한 빨리 은신처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버지는 그 구덩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서 손을 들고 딸에게 따라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습니다. 소녀는 주위의 폭발에 겁을 먹은 데다 어두운 구덩이 속으로 들어간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아빠, 아빠가 안 보여!”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늘은 백색 예광탄 불빛으로 환했고 불타는 건물 때문에 사방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고개를 든 아버지는 구덩이 바로 앞에 선 딸의 윤곽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아빠는 네가 보여. 그러니까 뛰어!” 꼬마 소녀는 펄쩍 뛰었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이 보여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자신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믿고 나가는 것입니다. 또 믿음에서 나오는 신뢰는 동물과 사람간에도 이루어집니다. 언젠가 방송을 통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커스를 본 적이 있는데, 동물들이 불붙은 둥근 고리를 통과하는 것이었습니다. 대개 동물들은 불을 싫어합니다. 털이 긴 동물일수록 본능적으로 불을 두려워하고 꺼립니다. 그런데도 서커스단의 동물들은 주저하지 않고 펄쩍 뛰어서 불붙은 고리를 통과했습니다. 동물학자들은 이에 대해 말하기를 동물들이 불을 통과하는 이유는 불에 뛰어든 후에 주어지는 보상이나 가혹한 훈련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동물과 조련사 사이의 믿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조련사에 대한 믿음만으로 본능을 거스르면서까지 불에 뛰어드는 것입니다. ‘조련사는 절대로 나를 해롭게 하지 않는다. 조련사의 말대로 해도 괜찮다.’ 이런 신뢰가 있기에 동물들도 불이 활활 타는 고리에 뛰어듭니다. 일개 미물도 조련사를 믿고 본능을 이기는데, 하물며 사람인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고수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토마스 그룸이라는 기독교 교육학자는 믿음을 세 단계로 말합니다.

첫번째 단계는 Faith as believing, 즉 ‘인지적 차원에서의 신앙’입니다. 이것은 믿는 대상을 내가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신앙의 모든 행위들(찬송, 기도, 예배, 봉사 등)을 통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깊어지면서 점점 하나님 사랑을 깊이 알게 되고, 그 능력을 알게 되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자꾸만 깨달아 가면서 그것이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두번째 단계는 Faith as trusting, 즉 ‘신뢰적 차원에서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이제는 믿어집니다. 신뢰가 갑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사랑을 날마다 받으면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존재를 느끼게 되면, 그때부터는 부모를 신뢰하고 의지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세번째는 Faith as Doing, 즉,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의지적인 것입니다. 믿어지니까 행동합니다. 나의 삶에 힘과 용기를 줍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살이에 지치고 자꾸만 낙심하는 이유는 바로 신뢰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합니다.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어떤 말도 믿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아픔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생길 때에는 걱정이 없습니다. 믿음이 가면 용기도 생기고, 창의력도 발동합니다. 그래서 만남의 관계에서 신뢰보다 더 중요한 게 없습니다. 이렇게 믿음은 곧 생명력으로, 삶의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바로 삶으로 나타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느끼든 못 느끼든, 누구나 나름대로 믿음의 분량을 가지고 일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는 이미 가지고 있는 믿음을 가지고 행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할 때 우리의 목적대로 팔을 움직이고 뻗습니다. 그런데 팔을 사용할 때마다 팔이 자기 어깨에 붙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가며 팔을 움직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분량대로 믿음을 주셨습니다. 성경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가진 믿음이 완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되려면, 먼저 우리의 믿음이 성장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할까요?
여러분이 가진 믿음을 사용하려면, 먼저 ‘분명한 믿음의 대상’을 마음속에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위대한 역할을 합니다. 동물들은 인간과 달리 상상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상상은 영적인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다음 믿음으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은 소유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우리가 “바라는 것들(분명한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에는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기도하면서 목표가 분명하지 않고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그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때에는 분명하고 명확한 믿음의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1997년 12월 미국 라이프지는 세계 역사에 공헌한 100명을 선정하는 중에 가장 위대한 인물로 토마스 에디슨을 꼽았습니다. 그는 전구를 발명하기까지 1년 넘게 하루에 4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수천 번의 실험 끝에 전구 발명에 성공했던 것입니다. 축전기 역시 5만 번 이상의 실험끝에 만들어낸 것입니다. 에디슨은 발명하기로 작심하면 수없는 실패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꼭 이루었습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믿기로 결단했으면 번복하거나 뒤돌아보지 말고,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합니다. 실패하면 일어나고, 넘어지면 또 일어나고, 괴로움을 당해도 또 일어나고, 계속해서 목표를 향해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밀고 나가야 합니다.

미국의 시카고 출신의 부흥사였던 무디(Dwight L. Moody 1837-1899)는“그대 자신을 믿어 보라! 실망할 때가 있을 것이다. 친구를 믿어 보라! 언젠가 그들은 그대와 헤어지거나 떠날 것이다. 그대의 명성을 믿어 보라! 어느 때 훼방하는 혀가 그것을 뒤집어 엎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어 보라! 그대는 현세와 내세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겐 살아가는 일이 너무 힘들 때,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힘을 내십시오. 우리 앞에 현실이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나아가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십시오. 그 예수님을 모셔들이고 의지하면 예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나아가면 길이 열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삶의 절대 절망을 이기시고 절대 희망을 주신 분입니다. 그 주님과 함께 승리하시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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