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미주성결대 명예총장)

1970년대에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탈세로 투옥된 일이 있었습니다. 미국의 댄버리 교도소였습니다. 미국에서는 탈세라면 사회적 파렴치범으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그 때에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문선명을 사면하여 출소시키라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문선명이라면 그가 무엇을 하든지 무조건 반대하고 싶은 정서를 가진 우리로서는 그들의 행동이 좀 생뚱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그들은 문선명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시위를 벌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비록 문선명의 탈세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칫 종교의 자유가 제한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초점이었습니다. 종교의 자유는 어떤 법률로도 제한할 수 없는 것이 미국의 헌법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국방백서에 북한을 ‘주적’(主敵)으로 밝혀 적느냐의 여부가 문제되어 오고 있습니다. 진보정권과 평양정부는 북한주적론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물어볼 일이 있습니다. 평양정권은 과연 대한민국을 전혀 주적으로 삼고 있지 않다는 것인가요.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육촌이나 팔촌이 땅을 사는 것보다 사촌이 사는 것이 더 아프다는 뜻입니다. 곧 심리학적 용어로는 ‘근친적대론’이고, 정치외교적 언어로는 ‘원교근공책’이기도 합니다. 가까울수록 적이 되고 먼 나라일수록 친구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운 종교끼리는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합니다. 천주교와 유태교, 개신교 사이가 그랬습니다. 그리고 힌두교, 불교, 시크교 사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 개신교회가 통일교를 더 주적으로 삼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 종교들의 주적은 ‘사촌’ 종교가 아니라 무신론이어야 합니다. 무신론은 각 종교가 경외하는 신적 존재 자체를 통째로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신에 대한 모욕치고 그보다 더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기독교 자체로 보아도 “하나님은 없다”하는 무신론을 제일 경계해야 합니다. 무신론은 실상 자기 자신을 신격화하는 일이 아닙니까. 기독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를 극명하게 가르치는 교훈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류와 피조물을 찾아오시는 종교이고 다른 종교는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 헤매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잘못된 가상의 신들을 섬긴다 해도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가 다른 종교를 통하여서도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적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있습니다. 사람들을 무신론자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누구나 종교를 하나씩 갖도록 권고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깝습니다. ‘1인 1종교 갖기 운동’을 기독교가 앞장서서 벌여 나가야 합니다. 일단 온 인류가 종교를 가질 필요성을 절감한다면 기독교는 그 다음 단계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이 가장 진실된 창조주이시라는 전도의 단계입니다. 종교 가운데서도 가장 우수한 종교가 바로 기독교라는 대답을 제공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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