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환 목사(온누리포틀랜드교회)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문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전제품의 경우 그 유행 기간이 짧아져 2-3년을 좌우한다고 말해야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선택의 중요성은 백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겠지요. 분명 오늘은 어제의 선택의 결과요, 오늘의 선택은 내일의 인생을 좌우할 것입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는 인간은 결국 한 순간에 하나밖에 할 수 없는데, 그럴 바엔 적극적으로 최선의 것을 택하여 기회비용을 최소화하는 것만이 경쟁과 도전에서 만족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선택이 중요하다보니 선택에 대한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후유증도 적지 않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 긴장과 고민을 거듭해야 합니다. 제한된 것을 선택하기 위해 지원자가 몰리다보면 이로 인한 경쟁율도 함께 높아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선택은 하나의 성공과 나머지의 실패라는 결과를 낳습니다.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 것들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가질 것인지도 선택사항입니다. 깨끗이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연민을 가지고 마음에 두어야 하는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실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인 듯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명제도 있습니다. 인생은 선택이 아니라 누림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한 순간에 하나밖에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다만 보다 좋아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서 적극적이고도 의지적으로 무엇인가를 결정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동태의 삶을 강조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불완전한 선택능력을 지나치게 사용하여 불완전한 결과를 자초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놓치거나 망쳐 버린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어떨땐 선택하는 것보다는 선택을 당하는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누구를 사랑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주어지는 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 더 행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누림의 태도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옳을까요?”라는 질문을 무시하면 어떨까요? 그 질문 자체가 선택을 강요하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인생은 선택이다”라는 명제와 “인생은 누림이다”라는 명제 사이를 잇는 접속사로 “또는”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그리고”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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