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길영 목사(순복음시카고교회)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의 사장이 된 하로 카터스에게는 이런 뒷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습니다. 미시건 주의 후린트라는 마을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는 성장하여 똑같은 날, 똑같이 그 마을에 있는 제너럴 모터스 회사에 취직했습니다. 둘 다 완성된 자동차에 페인트를 칠하는 도장 파트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수십 년이 흘렀습니다. 형은 65세로 그 회사에서 은퇴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그 회사 사장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문기자가 페인트공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형을 인터뷰하며 “당신은 입사부터 은퇴할 때까지 줄곧 페인트 파트에서 일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페인트 파트에서만 일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시간에 쫓기는지 그 일에 시간을 다 빼앗겨서 다른 일을 할 만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신문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같은 곳에서 일하면서 이 회사의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어디에서 시간과 돈을 벌 수 있었나요?” 그러자 형은 “아! 제 동생은 야심가였으니까요!”라고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알고 보니 동생은 날마다 자동차에 페인트칠하는 노동을 하고 있었지만, 당당한 인생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를 다니면서 코피를 흘리면서까지 경리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후에 그는 경리 전문가가 되었고, 페인트공으로 일하고 있던 제너럴 모터스의 경리사원 시험에 응시하여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리고 경리 파트에서 성실히 일했습니다. 모두가 그를 인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 분쟁이 생겼습니다. 그때 그는 분쟁을 지혜롭게 해결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매니저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높은 목표, 더 귀한 목표를 세우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결국 그는 페인트공으로 일하던 제너럴 모터스의 사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목표의 중요성입니다. 목표는 위대한 힘을 발휘합니다. 스포츠 경기나 사업계, 경제계나 정치계에서 특별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의 공통점은 확고부동한 목표의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열심히 삽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삶의 구체적인 목표를 물어 보면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들이 드뭅니다.  인생에 있어서 목표가 없다면 불필요한 부분에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다가 정작 이루어야 할 일을 이루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목표를 가지되, 목적이 있는 인생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가지고 가야 하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른 목적을 가지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잉그리드 버그만이라는 여배우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제8복음>, <가스등> 등으로 유명해졌는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는 그녀의 연기 때문에 언제나 최고의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원래 스웨덴 출신으로 유럽을 풍미하다가 더 크게 명성을 떨치려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할리우드로 왔습니다. 그리고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해 두 번이나 아카데미상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그만한 명배우는 드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명배우가 성공의 정점에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할리우드여! 실버 스크린이여… 이렇게 황량한가, 이렇게 허무한가….”그녀는 남편과 딸을 버리고 유명한 영화감독과 재혼했다가 얼마 못 가 파경을 맞이합니다. 그 후에도 여러 남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딸이 계부를 죽이는 끔찍한 일이 발생합니다. 그녀에게는 영화배우로 성공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돈을 벌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목표를 성취했습니다. 그러나 목적이 약했습니다. 종국에는 암으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목표는 있지만, 목적이 없는 인생을 사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는 갖고 있지만, 목적이 없습니다. 목표가 방향을 이야기한다면 목적은 의미를 묻습니다. ‘왜 사는가’하는 것은 목적을 위한 질문이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는 목표에 대한 질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와 목적을 혼동한 채, 그것이 마치 하나인 것처럼 헤매다가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헤밍웨이가 쓴 『노인과 바다』에는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온갖 고생을 다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바다에서 많은 날들을 기다리다가 천신만고끝에 커다란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노인은 그 물고기를 배에 매달고 항구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건져 보니 앙상한 뼈만 남아 있었습니다. 상어떼들이 습격하여 물고기를 다 뜯어먹어 버린 것입니다. 노인은 심한 허탈감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헛된 목표를 정하여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허무한 삶을 상징적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비전을 얻었기에 삶의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데라나 롯과는 다른 목적을 가졌습니다. 창세기 11장 31절에 보면, 데라는 자기의지로 자기 계획을 위해 자기목표인 가나안으로 가고자 하였습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롯은 아브라함을 따라서 아저씨의 목표인 가나안으로 가고자했습니다. 뚜렷한 자기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다른 사람들의 유혹에 잘 넘어 갔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에게 현혹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자기의식이 전혀 없이 정체성을 상실한 롯이나 오직 자기의식만을 가졌던 데라 모두 가나안땅에 준비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아브라함만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가나안 땅의 위대한 역사의 중심인물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갔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은 ‘내가 네게 지시할 땅’이었습니다. 목표만 추구하면 언제나 제어가 안 되는 소유욕 때문에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목적중심의 삶은 목표의 가치가 소유욕이 아니라 존재성의 실현이기에 아름답고 의미 있고 가치가 있습니다. 영어로 Being이 Having과 Doing보다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Being이 목적이라면 Having과 Doing은 목표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목표지상주의가 아닌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진 비전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비전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얻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비전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움직였습니다. 움직일 때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말씀을 통해 보여 주시는 비전의 땅, 곧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들리는 비전을 바라보며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살아갔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목적이 있는 삶,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목적 안에서 목표를 가지고 가는 삶이 확실했습니다(빌 3:12).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모시면 내 안에 예수님이 계셔서 우리의 존재와 더불어 모든 길을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천국까지 이르는 영원한 목적이요 가치입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서 목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가지고, 오늘의 힘든 환경을 이기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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