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부터 가족을 자랑하는 사람은 팔푼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편집부에 들어오는 글 중에 가족 이야기가 나오면 신문에 게재할 마음이 내키지 아니하여 폐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 자신이 팔푼이가 되었나보다.
오랜만에 라모나쉼터에 가족들이 모여 한바탕 북새를 치렀다. 몽골, 캄보디아 등지의 선교사로 파송받았던 형제들이 함께 모인 것이다. 제일 큰 맏동서는 1970년 초반 아직 한국 교계가 피폐의 면모를 면치 못했던 시절에 문서선교사역을 시작하여 평생을 이 사역과 더불어 씨름을 해오고 있으며, 둘째 동서는 13년 전 몽골 선교사로 파송되어 지금껏 사역을 감당해 오고 있다. 또한 첫째 처남은 뉴질랜드 선교사로 파송되었다가 현재는 전라남도 광주에서 목회를 하고 있으며, 둘째 처남은 최근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을 하고 있다. 셋째 동서와 막내 동서는 안수 집사로 각각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필자는 40여 년 가까이 로고스선교회와 삶을 함께 해오고 있는 중이다.

주일 아침 예배 후 가족들은 각각 현지에서의 사역을 간증삼아 보고하기로 했다. 마치 초대교회 사도들이 흩어져 나가 전도활동을 하다가 적절한 날 함께 모여 자신들의 사역 보고를 하는 것처럼, 그간 어렵고 힘들고 상처받았던 일, 보람되었던 일 그리고 미래의 계획 등을 서로 보고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쏟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둘째 동서의 사모는 그들이 서울에서 개척교회를 했던 때 장기 기증하는 곳에 스스로 찾아가 콩팥을 스스럼없이 떼어 주고, 삼 년만 더 근무하면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이를 마다하고 남편과 함께 선교사역에 뛰어들 만큼 복음 전도에 몸이 달기도 했던 사역자들이다.
이러한 배경에는 부모의 애절한 기도가 큰 역할을 했다. 비록 그들의 아버지는 7남매를 두고 40도 채 안 되어 일찍이 소천받기는 했지만, 2남 5녀를 모두 목회자 아니면 목사 사모가 되라고 기도하며 가르쳤다는 것이다. 그 당시 엉겁결에 늦둥이로 낳은 막내는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갓난아이였다. 그럼에도 사모는 7남매를 하나같이 믿음으로 성장시키는 데 실패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뼈가 저리고 허리가 굽는 고생을 하면서도 남편의 뜻과 유언을 따라 자녀 모두를 목회자와 선교사와 사모로 키워낸 것이다.

이들 모두에게는 공통점이 있었다. 수십 년 사역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소유가 없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자신의 명의로 된 집 한 칸 없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동차 한 대도 자기 소유가 없이 법인체 아니면 현지인 명의로 하여, 언제든 미련이나 기대 없이 그 단체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주의 복음만 전하는 일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 했던 바울 사도의 고백대로, 그간 받은 바 은혜가 족하고 감사하여 빚진 마음으로 현지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그러기에 자신의 일에 대해 어떤 기대도 대가도 없다. 단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딤전 6:8)이라는 교훈대로 가장 기본적인 삶의 수준에 눈높이를 두고 사역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 : 20)라는 말씀대로 남은 시간 동안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고 영광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기로 기도하며 다짐한 것이다.
결코 자랑이 아니기를 바란다. 성도들 모두가 함께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어떤 상급이나 칭찬이 없다 하더라도 공의로운 주께서 계산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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