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당시 약 20여만명의 미국 군인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약 200여만 명의 사람들이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고 염려, 근심, 불안, 초조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전쟁에서 죽은 사람은 20여만 명인데 심장마비로 죽은 사람은 200여만 명이었습니다. 10배나 많은 사람이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죽었습니다. 이처럼 질병이나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염려입니다. 우리들의 삶에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괴로운 일 자체보다도 그 짐이나 일로 인해 생기는 근심, 걱정, 불안, 초조 절망 등이 마음의 더 큰 짐으로 다가옵니다. 생활고와 사업의 문제로 염려와 근심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파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근심, 걱정, 염려, 근심, 걱정이 다가올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염려, 근심, 걱정에는 유익이 전혀 없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염려, 근심에 대한 이해를 분명히 해야 됩니다. 근심과 걱정은 우리에게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근심걱정 한다고 환경이 변화됩니까? 가정이나 직장이나 생활이 변화될 수 있습니까? 염려, 근심한다고 살 사람이 못 살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나이 많은 사람이 젊어지지도 않고, 병든 사람이 걱정한다고 낫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이 염려한다고 죽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생로병사에 염려와 근심은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염려로는 키를 한 자도 키울 수 없고, 머리카락 한 가닥도 희거나 검게 못합니다. 염려와 근심은 백해무익이요, 무용지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날마다 공해와 같이 들이마시며 그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 염려와 근심입니다. 염려하든 안하든 우리 인생에서 일어날 일들은 다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만 빈센트 필 박사는 쓸데없는 걱정에 대해서 한 연구기관의 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사람이 걱정하는 일중에서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40%,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걱정이 30%,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 22%, 우리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 4%라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해 염려, 근심하는 96%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은 불과 4%밖에 안 되는데 그것은 염려, 근심한다고 조금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과 걱정은 우리에게 굉장한 해를 끼치는 공해입니다.

또 염려는 정신적으로 절망과 낙심을 가져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해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합니다. 염려와 근심은 얼굴에 나타납니다. 얼굴에 광채가 사라지고 생기가 없습니다. 그만큼 육체적인 건강에 염려와 근심이 충격을 가져온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영국의 아더 랭크라는 실업가는 항상 사업에 대한 고민과 걱정으로 불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염려와 근심에서 벗어나서 살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좋은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내내 염려하고 근심하지 말고, 수요일 하루 한꺼번에 모아서 하루 종일 염려와 근심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월요일부터 생겨난 염려와 근심을 전부 적어서 염려와 근심함에 넣었습니다. 또 목, 금, 토, 주일까지의 근심, 걱정도 적어서 근심함에 넣고 하나하나 읽으면서 수요일에 근심했습니다. 그렇게 해보니까 실제로 염려, 근심하던 것이 며칠 뒤에는 대개 해결되거나 별로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아더 랭크는 “아! 사실 염려, 근심하는 것이 실제로 세월이 지나고 보면 그렇게 무서운 것도, 중대한 것도 아니고,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아니구나”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염려 근심을 계속하면 건강이 나빠집니다. 실제로 당뇨병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마음속에 근심이 있으면 당 수치가 급격히 올라간다고 합니다. 고혈압 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사들은 용서하지 못하고 관용하지 못하는 미움 때문에 고혈압이 악화된다고 말했습니다. 미움과 염려와 근심은 결국 암을 발생시키거나 굉장한 병을 가져옵니다.

염려 때문에 충치도 생깁니다. 미국의 노스 웨스턴대의 레오나르도 포스트익 박사는 근심과 걱정을 할 경우에 침 분비가 억제된다고 말했습니다. 근심하고 염려하거나 화가 나면 입술이 바싹바싹 탑니다. 침이 마릅니다. 그래서 입속의 타액이 중성화되지 못해서 충치 등 입병이 생깁니다. 그뿐 아닙니다. 미국 북쪽 위스컨신주의 먼로병원장인 쉰들러 박사는 류마티즘의 30%가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으로 생겨나고, 피부병의 33%와 담낭병의 50%는 마음의 혼란과 고통으로 생긴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대다수의 질병이 외부의 육체적 자극 때문이 아니라, 무기력감, 좌절감, 불안, 염려, 공포, 패배감, 절망 등의 정서적 이유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염려와 근심이 왜 그렇게 무섭습니까? 성경은 마음의 근심이 뼈를 마르게 한다고 말씀합니다.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은 교감신경을 활성화하고, 교감신경은 우리 몸을 망가뜨립니다. 그 결과 심장이 펄떡펄떡 뛰고, 소화가 안 되고 소변이 샛노랗게 변합니다. 반대로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은 부교감신경을 자극해서 몸을 치료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부교감신경을 자극하므로 몸 속의 기관들을 살아나게 하고 건강하게 만듭니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은 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서 뼈까지 마르게 만듭니다. 뼈가 마르니 간이 남겠습니까? 신장이 남겠습니까? 장, 소장, 신장이 견뎌내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의사들은 육체적 질병의 60%는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 염려, 근심, 불안, 초조, 절망, 미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까? 좀처럼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염려와 근심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염려와 근심을 내가 하지 말고 염려 보따리를 완전히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부자, 교육받은 사람, 잘난 사람, 건강한 사람만 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남녀노유, 빈부귀천 할것없이 다 오라고, 쉬게 해주겠다고 주님이 직접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짐을 져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라고 하십니다. 염려, 근심을 맡길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자원해서 염려와 근심을 가진 자는 다 오라고 하시니, 우리는 삶 속의 염려와 근심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육신을 쓰고 오셔서, 우리와 같이 계시고, 풍찬노숙을 하시면서 우리의 사정을 친히 다 아시고, 우리의 짐을 십자가에서 짊어지셨습니다. 죄짐을 다 짊어지고 가셨습니다. 오늘날 경제 때문에 모두들 힘들어하지만 그 주님께 기도로써 염려와 근심과 걱정을 맡기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해 오늘의 힘든 환경을 이기고 나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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