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미주성결대 명예총장)

 1980년대 초만 해도 중국 선교는 불모지였습니다. 그래도 선교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선교의 열매가 많았습니다. 대체로 모두 감동적인 성과였습니다.
  그러던 때 어떤 의사 한 분이 중국선교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큰 도시에 머물며 중국말이나 풍속을 배우는 당연한 과정을 생략하고 직접 중국 오지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태어나 초등학생 시절을 보낸 분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는 모범 장로로 알려진 분입니다.

  선교 현장에는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들이 산 첩첩 물 겹겹이었습니다. 그 때는 아직 중국정부가 공산당 이데올로기에 맞추어 종교정책을 펴나가던 시절이어서 감시가 너무 심했습니다. 그래도 선교개척자는 십자가를 지고 해골언덕을 올라가야 한다는 각오로 무장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인데 가족과 나뉘어 산다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일 마음 아픈 일이 하나 있었습니다. 고통당하며 이를 악물고 끝까지 참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세례와 성찬을 베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안수 받은 목사만이 베풀 수 있는 성례전이라는 건 어려서부터 들어온 일입니다. 그러나 그 오지까지 올 목사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예수 믿겠다고 어렵사리 결단한 성도들에게 성찬은 좀 미뤄둘 수가 있지만 세례는 그럴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 때에 누군가가 귀띔을 했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신부가 없는 경우 혹은 급한 환자가 예수 믿을 경우 수녀나 평신도도 세례를 베푼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너희는 가서....... 세례를 베풀라”는 말씀에서 ‘너희는’이 열한 사도만 뜻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대체로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성경적 근거까지 제시해 주었습니다. 

  부담감은 좀 있었습니다. 그래도 성경말씀에 반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힘을 얻고 과감히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이 점점 알려지자 이번에는 자신이 한국에서 섬기던 교회에서 항의가 왔습니다. 그곳까지 와서 세례 베풀어달라고 요청할 때에는 이 핑계 저 핑계로 못 온다던 담임목사가 교회 설교 도중에 이렇게 일갈했답니다. “이단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왜 합니까?”
그 말을 듣고 선교지에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중국대륙 전체가 울릴 만한 통곡이었습니다. 그 통곡소리가 이 사람에게까지 들려와 조각글 두 편을 발표하게 했습니다. “평신도에게도 성례권을 주라,” “장로 선교사, 권사 선교사”입니다. 목사 선교사를 교단법에 제도화한 것처럼 평신도 선교사도 명문화시키라는 요구였습니다. 그리고 ‘질서’라는 이름 아래 성례권을 목사가 독점하지 말라는 주장입니다. 

 그 글의 영향이었을까, 요즈음 미주한인교회에서는 주보에 ‘담임 장로: 아무개,’ ‘설교 장로: 아무개’ 그런 직함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이나 헌신, 그리고 신학연구에서 나무랄 데 없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목사들에게는 무서운 경고로 들립니다. 나귀가 변질된 대언자 발람을 향하여 지르는 소리 같아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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