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진 목사
시편 19:1-4


구약의 시인은 자연을 바라보며 이렇게 노래합니다.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시 18:3-4).
우리는 자연에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합니까?
첫째, 자연에서 하나님의 창조 솜씨를 만납니다.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 하늘과 구름과 바람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고요히 관찰해 봅니다. 우주공학도 생명공학도 결코 풀 수 없는 창조의 신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연과 인간의 창조주시라는 믿음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신비입니다.
대학시절 은사 이양하 교수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성냥개비 하나 만들 재주도 없는 내가 이 정도 살고 있는 것도 큰 은혜가 아니겠나?”자연 앞에서 하나님 은혜의 손길을 느끼며 겸허해질 수 있는 마음으로 그는 한국 수필문학의 백미로 알려진 “신록예찬”을 쓰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고 역설했습니다.
둘째, 자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합니다.
지구상에 사계절이 있는 것은 태양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공전하는 지구 축이 23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지구가 똑바로 서서 돈다면 일정 지역만 태양열을 받게 되어 큰 변이 일어날 것입니다. 적도 지방은 물이 증발하여 사막이 되고 남극과 북극은 엄청난 얼음덩이가 되었다가 지구 한가운데가 뚝 잘라져 버릴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구의 축을 23도 기울어지게 하여 사람이 가장 살기 좋은 보금자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자연은 때를 분별하는 감각을 일깨웁니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에 잎이 돋으면 사람들이 여름이 가까운 줄 안다”고 하셨습니다. 전도서 기자도 세상만사에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자연은 때를 가장 잘 분별하고 때에 맞추어 일정한 기능과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합니다.
씨 심을 때 씨 심고, 자랄 때 자라고, 열매 맺을 때 열매 맺고, 쉴 때는 쉽니다. 때를 따라 사명을 다하는 자연입니다.
초겨울 아침 처마 밑에 떨어져 죽은 제비를 본 적이 있습니다. 겨울이 되기 전 강남으로 가야 하는 철새인 제비가 때를 놓쳐 죽고 만 것입니다.
인생도 씨 뿌릴 때와 자랄 때와 열매 맺을 때와 쉴 때가 있습니다.
파종의 때를 맞은 청소년들은 좋은 씨를 뿌려야 합니다.
성숙의 때를 맞은 젊은이들은 잡초와 해충을 제거해 주며 영적 성장에 힘써야 합니다.
결실의 때를 맞은 장년들은 인격과 영혼의 열매를, 봉사와 헌신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황혼의 때를 맞이한 노년들은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더욱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딤후 4:21)고 썼습니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있었고 디모데는 바다 건너 에베소에 있었습니다. 로마에 가려면 배를 타야 하는데 겨울 항해는 어렵고 위험합니다. 그래서 “겨울 전에 어서 오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자연에서 우리는 “겨울 전에 할 일을 다 하라”는 메시지를 듣습니다.
겨울 전에 공부도 하고, 결혼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겨울 전에 봉사도 하고, 전도도 교육도 해야 합니다. 겨울 전에 은혜도 받고, 무엇보다도 겨울 전에 회개해야 합니다.
넷째, 자연에서 피조물의 탄식 소리를 듣습니다.
바울은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안다”(롬 8:21)면서 피조물도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 구속받는 날을 고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자연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온갖 공해로 파괴당하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을 계시하며 인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탐욕에 빠져 자연의 청지기 직분을 바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로 인하여 병든 인간성이 우리의 생존환경인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면서 자연을 “하나님 보시기에 좋도록” 회복시킬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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