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나를 무시하는 사람이 싫습니다.
저만 옳다는 사람이 싫습니다. 잘못만 꼬집는 사람이 싫습니다.
잘난 체하는 사람이 싫습니다. 제 몫만 챙기는 사람이 싫습니다.
그래서 이웃간, 노사간, 빈부 간, 심지어 가족간에도 갈등과 원한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싫어하는 사람을 다루는 법 세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네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사랑”을 뜻하는 성경 용어 셋이 있습니다. 에로스, 필리아, 아가페입니다.
에로스는 상대의 매력에 끌리는 감정입니다. 행복한 결혼이 에로스 사랑의 모형입니다. 에로스는 미모, 장점, 재능 따위가 불러일으키는 사랑입니다.
필리아는 상호간 흥미와 관심 때문에 끌리는 마음입니다. 필리아는 친구간의 우정에서 가장 잘 나타납니다.
아가페는 조건 없이 상대의 필요를 돌보는 사랑입니다. 성경이 이웃과 원수를 사랑하라고 명할 때 아가페를 쓰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아가페 사랑을 정확하게 설명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니 죽어도 못해!” 합니다. 옳습니다. 에로스나 필리아의 사랑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가페 사랑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아가페는 감정이 아니라 의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원수를 좋아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좋든지 싫든지 그가 잘 되기를 바라고 도와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둘째,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라”하셨습니다.
미국 독립전쟁 시 한 사람이 워싱턴 장군을 찾아와 사형 받게 된 군인의 사면을 청원했습니다. 워싱턴은 “미안하지만 당신 친구를 사면할 수 없소.”하고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찾아온 사람이 말했습니다. “그는 저를 미워하는 원수입니다.” 워싱턴이 놀라서 물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구명을 청한단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가 무죄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은 즉시 사면령을 내렸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인생에 선을 악으로 갚는 마귀의 수준, 선을 선으로 갚는 율법의 수준. 악을 선으로 갚는 그리스도의 수준이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우라. 악에게 지지 말고 오직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권면했습니다.

셋째,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하셨습니다.
스탠리 존스는 “싫어하는 사람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그를 위해 기도의 입김을 불어내라. 기도는 미움과 원한의 감정을 물리치는 방어막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는 원한을 제거하는 수단입니다. 위하여 진심으로 기도하면서 미워할 수가 없습니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은 모든 사람의 문제입니다. 전쟁은 나라간에 사이좋게 지낼 수 없다고 단정한 결과입니다. 법정소송은 개인이나 집단간 상충된 이해관계의 결과입니다. 개인의 불행은 다른 사람과 사이좋게 살기를 거절한 결과입니다.
주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심판을 받으리라”경고하셨습니다. 영어로는 심판의 위험이 있다고 표현했습니다(in danger of the judgement).

영어로 Anger는 분노라는 뜻입니다. 이 말 앞에 D자를 붙이면 Danger, 곧 위험이 됩니다. 그러니까 “노하면 위험해진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가 말하면, “또 설교야.” 하지만, 의사가 말하면 귀가 솔깃합니다. 그런데 어떤 의사가 회의석상에서 분노를 폭발한 끝에 쓰러져 죽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노하는 자는 위험하다.” 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쌓인 원한은 행복을 빼앗는 강도입니다.

옛날 알렉산드리아에 한 신실한 성도가 살았습니다. 불량배들이 그의 신앙을 비웃었습니다. “네가 믿는 그리스도가 무슨 기적을 보여 줄 수 있느냐?”
그는 대답했습니다. “당신들이 내게 퍼붓는 모욕과 포악을 내가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참고 견디는 기적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고 원한의 감정을 제거할 줄 아는 사람이 참 그리스도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세요.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세요. 모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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