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유니온 교회)

“오늘날 남조선의 인권문제는 국제사회의 지대한 관심사로 되어있고...... 실제로 남조선의 인권상황은 지구촌 그 어디에도 비견될 만한 대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할 것이다.”
<남조선의 인권실상>이라는 책의 머리말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남조선 지배층에서는 남한을 “자유민주주의의 진렬장”으로 광고하지만 실상 그 곳은 “인권탄압의 진렬장”이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입니다.
물론 이 책이 “남조선”의 인권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평양측의 대남공작을 목적 삼고 있다는 걸 짐작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과연 국판 224쪽 분량의 이 책은 1993년 평양출판사에서 발행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1980년대에서 90년대 초까지 말하자면 신군부에 의한 군사독재 시절에 자행되었던 사건들을 모아 놓았습니다.
그들의 표현으로, “광주 대참살 사건”을 비롯하여 권인숙 성고문사건, <전대협> 탄압, 리인모의 전향강요고문, 문익환, 림수경 등 방북인사 탄압 등을 자세히 취급하고 있습니다.
또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도 있습니다.  1986년 팀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 때 어떤 시골 초등학교 여교사가 미군 5-6명에 의하여 집단 윤간을 당했답니다. 그래서 “미국은 인권유린의 왕초”랍니다(209쪽).
이 책을 정독하면서 역사(歷史, history)가 무엇인가를 새삼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역사란 어떤 사실이 실제로 일어났느냐보다는 어떤 사실을 적어 놓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도 어떤 시각에서 기록했느냐는 역사관이 더 문제일 것 같습니다.
이 책만 보면 그때 남조선을 지배했던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그야말로 가장 잔혹한 철권정치를 폈다고 할 것입니다. 대조적으로, 이 책을 출판해낸 평양정부는 인권이 가장 잘 보장된 민주정부의 모범이라도 되는 듯한 인상입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저의 마음 속에서 줄곧 떠나지 않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거 참, 뭐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그것입니다.
“신앙과 선교는 공인된 자유와 권리로서 그 어떤 국가권력의 간섭이나 억압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조선에서는 신앙과 선교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교직자들이 불법련행구속되며 성역인 교회와 성당, 법당이 공권력의 란입으로 유린당하고 있다”(139쪽).
이걸 읽었을 때에는 너무 분통이 터져서 요즈음 유행하는 말로 “너나 잘 하세요”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싶었습니다. 아니면“예끼 이놈들, 엿이나 먹어라” 하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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