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교회 안에 갈등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교회에 해만 된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교회가 불완전한 기구라는 사실을 깨닫게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완전한 교회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완전한 교회란 없습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완전한 교회를 찾아 등록하라. 그 순간 그 교회는 불완전한 교회가 될 것이다.”
초대 교회도 불완전했습니다. 논쟁이 벌어져 분열 위기를 만났습니다. 유대인/이방인 논쟁입니다. 유대인으로 시작된 교회에 이방인들이 들어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고넬료를 “이달리야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며, 경건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막강한 군대의 지휘관이었고 근무지는 로마 총독부 소재지인 가이사랴였습니다. 그는 존경과 명예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한편 고넬료는 독실한 신앙인이었습니다.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그는 의미 있고 적극적이며 확고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배울 기회를 찾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많은 소문을 듣고 이 새 종교를 좀 더 배우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는지도 모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주어졌다는 것도 이해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했습니다. 그는 이제부터 어찌할 것인가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유력한 기독교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요, 주의 일에 헌신하는 자이며, 오순절에 능력의 설교를 한 인물이었습니다. 고넬료가 기도 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때에 베드로는 가이사랴에서 하룻길인 욥바에 있었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니 그 집은 해변에 있다 하더라”(행10:4-6).
당시 교인들은 이방인을 할례 받지 못한 자, 부도덕하고 부정한 자로 여겼습니다. 구약이 그렇게 가르쳤으며, 유대인들은 하나님도 유대인이요, 히브리어로 말씀하신다고 믿었습니다.
베드로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고넬료를 만나보고 하나님을 전혀 다른 각도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방인 고넬료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신화와 고정관념이 깨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넬료는 부도덕한 자도 부정한 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도덕도 알고 믿음도 있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을 믿는 자였습니다. 무할례자라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넬료에겐 가족이 있었고, 베드로에게도 가족이 있었습니다. 고넬료는 자녀 교육을 염려했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고넬료는 다 같이 잘 살아야 한다는 신념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했고, 베드로도 같은 뜻으로 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구제했습니다. 고넬료는 군인으로 훌륭한 지휘관이 되려고 애썼고, 베드로도 좋은 교회 지도자가 되기 위해 힘썼습니다. 고넬료는 마음이 상할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음식과 즐거움과 믿음을 나누면서,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크게 외쳤습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10:34-35).
이때 고넬료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만남을 통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베드로였는지도 모릅니다. 이방인 차별의식이 무너진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교인들간에 뜻이 안 맞아 일부 교인끼리 따로 예배드렸지만, 그도 흡족치 않아 가정예배를 드리던 부부가 이번에는 내외간 의견이 달라 아내와 남편이 리빙룸 양쪽 구석에 따로 떨어져 각자 예배하고 있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베드로가 배운 교훈을 배울 수 있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따라 차별하는 편파적인 분이 아닙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베드로의 교훈을 곧잘 잊어버리고 낯선 모습으로 오시는 하나님을 알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을 잘못 보기 때문에 하나님도 잘못 보는 것입니다. 교회는 갈라놓는 담이 아닙니다. 이어 주는 가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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