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주한 삶을 살다보면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습니다. 자기 문제, 자기 상황, 자기 환경에 자기도 모르게 갇히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음으로써 다른 세상의 존재와 상황에 대하여 자극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고와 해석의 내용을 바꾸려면 나의 위치를 바꾸어 보아야 합니다. 공간적 위치나 역할의 위치를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생각만을 바꾸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치를 바꾸려면 반드시 거쳐야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바로 떠남입니다. 떠나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하고 관점의 변화 역시 불가능합니다. 부득이하게 어떤 자리를 완전히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일정기간만이라도 떠남을 체험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떠남의 유익은 무엇일까요? 떠나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죽을 힘을 다해 붙잡고 있는 그것들은 대부분 우리를 죽일 수 없는 것들입니다. 헤어지면 죽을 것 같지만 죽지 않습니다. 없으면 못 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현재 우리가 가진 것들을 우습게 여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열심과 성실로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뜻입니다. 떠남은 이를 선택한 사람에게 이제껏 가보지 못한 세계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갖게 합니다.

어떤 유익이 있을까요? 그곳에도 가치가 있고 사랑할 만한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성격과 태도에 따라 미경험의 세계에 대해 강하게 부정하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에 가서 모든 사람은 인정합니다. 내가 알고 있던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내가 그토록 싫어했고 인정하지 않았던 세계 속에도 귀하고 배울 만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지구 반대편에도 지금 나와 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고민과 즐거움은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것들과 같은 보편적 원리 아래 있습니다. 아니 내가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을 그들은 이미 경험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나의 단계를 이미 넘어서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아는 것은 귀한 깨달음입니다. 인간은 경험적 깨달음을 통해 성숙의 단계로 들어서게 되지요. 그런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떠남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웃리치도 좋고, 역할극도 좋고, 여행도 좋습니다. 자발적으로 하지 않으면 강제로 겪어야 하는데 그런 상황이 되었다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입니다. 이미 뼈저린 고통을 겪었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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