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철 김선경. 올 여름 도미니카 아웃리치를 가서 알게 된 부부 선교사의 이름입니다. 우리가 가기 몇일 전 남편 선교사는 예배를 마치고 나오다 현지인 괴한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이자 이제 막 마흔 넘은 아내 선교사는 두살박이 막내를 안고 업으며 삶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방 한구석에 모셔놓은 남편의 사진과 유골 그리고 유품은 소식이 사실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벽에 걸린 말씀은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에 가치를 두고 있었는지를 말해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어찌

나 아프던지요. 남은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교리입니다.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충분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구원론의 범주를 벗어나 좀더 넓게 이 의미를 되새길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믿음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믿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믿음이야말로 삶의 필수 요소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에는 굴곡이 있습니다. 강할 때가 있고 약할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는 일, 믿음을 강화시키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언제나 믿음이 필요하겠지만 다른 때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보이지 않을 때입니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미래를 볼 수 없습니다. 보이지 않기에 불안하고 가보지 않았기에 두렵습니다. 이때야말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결단은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래서일까요? 주님은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죽음 앞에 서 있을 때입니다.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겪는 가장 큰 사건이요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입니다. 죽을 위기에 처할 때나 사랑하는 사람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때 우리는 혼란과 극한의 두려움에 빠져듭니다. 그 충격 때문에 어떤 이는 우울증에 빠져들고 슬픔을 못 이겨 망자의 뒤를 따라가려고 합니다.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믿음 없이는 죽음을 이길 수 없습니다. 부활의 믿음이 없으면 슬픔을 이길 수 없습니다. 또 다른 경우가 있다면 이해되지 않을 때입니다. 천사의 얼굴을 한 어린 아이가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 죽는다든지, 선행을 베풀던 젊은이가 괴한의 총에 맞아 쓰러지는 일들은 이해하기 어려습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이가 불치병에 걸려 평생을 침상에서 살아야만 하는 일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해되지 않기에 고통스럽습니다. 믿음이 필요할 때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에게 찾아온 비극적인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 유가족이 얼마나 될까요? 어떤 말이 그들에게 위로가 될까요? 결국 믿음밖에 없습니다.

그 유가족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믿음 없이는 관계를 유지할 수도 없고 자존과 자애의 삶을 살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알기 때문에 믿는다고 하지 않고 믿음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만 살 것입니다. 당신 안에 어떤 믿음이 있는지를 돌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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