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포틀랜드에선 이제 우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몇 개월간 날씨가 정말 좋았지요. 하늘과 바람과 온도가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앞으로 몇 개월 동안은 거의 매일 비를 보며 지내야 합니다. 그래도 이곳 사람들은 날씨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습니다. 나중에야 지겨울 정도로 내리는 비라고 하겠지만 몇 일 전 내린 비는 그 동안의 가뭄과 건기를 한 번에 해소하는 고마운 비였습니다.

교회 울타리에는 경계를 표시하기도 하고 관상용으로도 심어놓은 나무들이 있습니다. 정확한 이름을 몰라 저는 그냥 울타리 나무라고 부릅니다. 크게 자라면 사람 키의 서너 배까지 성장합니다. 사람 발자욱으로 두어 걸음 간격마다 교회 주변을 빙 둘러 심겨 있어 보기에도 참 아름답고 울타리 역할도 톡톡히 합니다. 그런데 그 나무들 중에 중간중간 보기 흉할 정도로 누렇게 색이 바랜 나무들이 있습니다. 말라 죽은 것입니다. 실은 그 나무들은 지난 5월 교회 환경미화작업을 하면서 옮겨 심었던 나무들입니다. 그런데 몇 개월 동안의 건기를 버티지 못하고 말라 죽은 것입니다. 그때 나무에 대해 상식이 많았던 성도님은 포틀랜드에서는 나무를 옮겨 심으려면 우기가 시작되는 10월쯤 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역시 경험자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쉽지만 색이 바랜 나무들을 다 뽑아 버리고 다시 심어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중 한 그루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관심을 갖고 보는 이만 알 수 있을 정도였지만 분명한 소생의 사건이었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기쁘던지요.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죽어가는 나무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 말씀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비밀은 보이는 데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땅속에 있었습니다. 그 나무가 심긴 토양은 옆의 나무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른 것은 뿌리였습니다. 그 나무의 뿌리가 다른 나무들보다 좀더 건강했고 깊고 넓게 퍼져 있었습니다. 잔뿌리가 많고 좀더 깊이 심긴 그 나무는 이식의 아픔과 건조함의 고통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흠뻑 내린 비에 생기를 되찾고 푸르름을 회복하는 나무를 보면서 그 동안 얼마나 비를 갈망했을까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쓰러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뿌리깊은 나무는 수개월의 건기를 버틸 수 있습니다. 영혼의 뿌리를 어디에 그리고 얼마 만큼 깊게 내리는가는 더욱더 중요하겠지요. 하나님에게 뿌리를 내리되 깊게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래야 이 혼란의 시대, 미혹의 시대, 불확실의 시대를 견딜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다시 은혜의 비가 내릴 때 제일 먼저 살아날 것입니다. 뿌리를 점검하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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