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망각하고 싶어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가장 잘 잊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처음엔 어색해하고 저항하기까지 합니다. 이질적인 환경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본능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타협과 적응의 단계에 들어가면 점점 환경과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그리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자신의 과거를 잊습니다. 잊고 싶은 과거가 있는 경우에는 그 속도가 더욱 빠르지요. 어느 순간부터 그는 새로운 환경에서의 지금의 모습이 본래의 자신인 것처럼 생각하며 행동합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그의 착각입니다. 잊혀진 것이 아니라 자신을 부정하는 것뿐입니다.

잊혀짐은 은혜입니다. 특히 수치스러운 부분이 잊혀진다면 더 감사할 일이겠지요. 하지만 잊혀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지에 의해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기억하지도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기억하지 않으려 할 때 비로소 우리의 과거는 잊혀집니다. 그 의지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는 그분의 주권 아래 있기에 어떤 조건을 말할 수는 없으나 대개의 경우 겸손과 공의가 실현되었을 때에 작용합니다. 때문에 만약 겸손과 공의가 실현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모든 것이 잊혀졌다고 착각하며 뭔가를 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회초리를 들어 우리의 착각을 깨뜨리십니다. 수치를 드러내시고 수고를 헛되게 하십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사람이고 더러운 존재인지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겸손한 사람은 그때부터라도 하나님의 손길에 순응합니다. 잠시 잊었던 겸손을 회복하고 기도의 자리를 찾아갑니다. 인위적으로 때를 앞당기려는 어떤 시도도 무모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잠잠히 여호와의 구원하심만을 기다립니다. 회복이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요즈음 한국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를 향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볼 때마다 그것이 하나님의 회초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저 역시 교회의 지체이기에 저에 대한 회초리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인간은 먼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의 노력도, 사역도, 지위도, 명예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교회가 설 자리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연약함과 실수를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릴 수 없듯이 우리의 논리로 진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실수는 하나님이 잊게 해주실 때에만 진정으로 잊혀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지켜보시는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 합당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진노 아래 있는 우리가 살 길입니다.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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