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헌신의 동기는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동기가 결국 결과를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동기로 인한 헌신은 그 과정에서 헌신의 가치를 떨어뜨립니다. 헌신의 즐거움도 잃게 하고, 헌신의 열매도 무효화시키는 경우가 많지요. 공명심이나 영적 영웅주의에 젖어 헌신을 결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질투가 헌신의 원동력인 사람도 있습니다. 야망도 헌신을 이끌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동기의 헌신은 대개 누군가를 죽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헌신은 뜨거울수록 주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다른 사람들의 헌신을 가로막는 경향으로 나타납니다. 헌신의 목적이자 대상인 하나님과 그분이 누리는 기쁨도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당합니다. 이런 헌신은 사람들에게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헌신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도한 것으로 느껴져서 결국은 헌신자 자신을 짓누르고야 맙니다. 자신을 죽이는 암살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과도한 헌신을 결단하고 거기에 얽매임으로써 서서히 죽어가는 사역자나 봉사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처음과는 달리 변질된 자원봉사자나 자선 사업가들도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유로운 헌신, 행복한 헌신을 날마다 이루며 살 수 있을까요? 헌신의 동기 속에 섞여 있는 야망을 소멸시켜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야망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타인을 섬기는 영성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심성만이 그 세계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의 헌신의 동기를 되돌아보며 이 영성에서 시작되었는지 그 영성을 지키고 있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한 여인이 초대받지 않은 만찬장에 나아와 옥합을 깨트리며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을 묵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이미 죄인이라는 사회적 낙인이 찍혀 있었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감, 자랑할 것이 없는 자존감이 그녀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자신이 정말로 죄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이것은 도덕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영적 의미에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한 용서의 은총이었습니다. 은총은 자기 변명의 언어를 자기 수용의 언어로 바꾸었고 두려움을 당당한 감사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은총의 근원이신 분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사랑은 눈물로 표현되었고 눈물은 헌신으로, 헌신은 향유가 되어 머리에서 발로 흘러내렸습니다. 그 순간 어느 누구도 그 아름다움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시기나 판단의 마음도 그 평안을 빼앗지 못했습니다.
오직 사랑만이 온전한 헌신을 가능하게 합니다. 향기가 오래 지속되는 헌신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두려움과 의심, 이기심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정직한 헌신, 행복한 헌신이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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