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흔히 그릇이라고 합니다. 그릇이 크다고도 하고 또 그릇이 너무 작다고도 합니다. 게다가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이 되려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는 가르침도 있습니다. 그건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생각입니다.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렘 51:34)라는 말씀도 성경에 있고, 바울도 선택받은 그릇(행 9:15)이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역시 아내를 ‘연약한 그릇’처럼 귀중하게 여기라고 교훈했습니다. (벧전 3:7). 
  그런 점에서는 예수님도 그릇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 가운데 가장 이름이 잘 알려진 그릇입니다. 공자보다도, 소크라테스보다도, 석가모니보다도 훨씬 더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기독교인은 물론이고, 기독교의 적대자들과 이슬람교도들도 예수라는 이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라는 그릇에 무엇들이 담겨 있을까요? 몇 가지만 말씀 드립니다. 우선 ‘여호와 하나님’이 그 그릇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계신 분’이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성령께서 그 그릇에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항상 성령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게다가 한 가지 더 말씀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의 영’이기도 합니다. 실로, 예수님 탄생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합작품입니다.
  그 그릇에는 여호수아가 담겨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히브리말로 발음하면 여호수아가 됩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낸 여호수아, 포로기 이후 성전을 새로 지을 때의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담겨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 이름에는 구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 분을 자신의 구원주로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 보장됩니다. 여호수아를 따라 간 모든 사람들이 가나안 낙원에 입성한 것과 같습니다.
  그 이름에는 영광, 평화, 기쁨이 담겨 있습니다. 천사들의 찬양처럼 ‘하늘에는 영광, 땅 위에는 평화, 사람들에게는 기쁨’으로 가득 차 있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에는 혁명이 담겨 있습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이기고, 섬기는 자가 섬김 받는 자보다 위대해지고, 가난한 자가 부자들보다 더 큰 상을 받고, 사랑과 용서가 증오심과 복수심을 이겨내는 혁명입니다. 무엇보다도 죽임 당한 자가 죽인 자를 이기는 혁명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 이름에는 함생이 담겨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함생, 하나님과 사람의 함생, 죄인과 무죄인의 함생, 사람과 동물의 함생, 이스라엘 사람과 이방인인 동방박사들의 함생,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아들’의 함생, 남자와 여자의 함생, 스승과 제자의 함생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처형한 빌라도와 처형당한 구원주가 함생하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 이름에 우리 인생 전부를 걸어야 합니다. 우리를 조롱하는 세상 사람들도 우리를 ‘예수쟁이’라고 불러 주지 않던가요. 예수 전문가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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