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가 가고 한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빨리 한 해가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성도를 보았습니다. 한 해 동안 너무 힘들었기에 해가 바뀌면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는 뜻으로 그리 말한 듯합니다. 정말 새로운 기운,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면 좋겠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도 새롭게 임기를 시작하니 정치와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변화의 방향이 중요할 것입니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만을 기대한다면 그 만큼 실망이 클 것입니다. 기대의 눈빛이 원망의 돌멩이가 되어 날아갈 것입니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려면 변화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합니다. 공공의 선을 향하고, 정의와 평화라는 진리를 추구하는 쪽이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변화보다는 진리가 원하는 변화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정말로 변화되어야 할 대상은 환경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시간과 환경의 변화는 자신의 변화를 위한 동기 또는 발판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자기 변화의 결단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뭔가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하면 그는 누군가가 일으키는 변화를 늘 따라가기만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훨씬 더 힘들고, 비효율적이며, 부작용이 많이 발생합니다. 잘못하면 변화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변화는 그 대상자들에게 긍정, 부정의 스트레스를 주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변화의 적극적인 수용자들은 그것을 더 좋은 결과를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이나 대가로 해석합니다. 그들에게는 변화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확신이 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변화가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쪽에 무게의 중심을 둡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낙관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들은 어렵고 불리한 면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변화에 대해서 두려움보다는 설레임의 감정을 가지려 합니다.

우리는 성공할 수 있고 또 성공하리라는 믿음을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눈앞에 있는 가장 냉혹한
현실들을 직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말합니다. 익숙한 것들과 작별해야 하고, 미래의 불확실성과 실패에 대한 예상을 뛰어넘어야 변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화해야 하며 변화를 선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변하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시대와 말씀은 우리에게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밖에 없습니다. 당신은 살아 있습니다. 살아 있음은 변화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바른 방향으로의 변화, 능동적인 변화, 모두를 함께 살리는 변화로 큰 걸음을 시작하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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