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목적과 인생의 비전을 품고 태평양을 건너온 사람들도 있지만, 더 이상 고국 땅에 머물 수 없어서 도망자처럼 비행기를 탄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인생에서 매우 큰 사건이요 스트레스입니다.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도 힘든 일이고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을 시도했다면 그곳이 지옥처럼 여겨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수에 대한 사람들의 수근거림이나 바뀌지 않는 시선은 심리적인 위축과 더불어 행동의 제약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뭐라 하지 않아도 자격지심 때문에 대인관계를 기피하고 의욕과 용기를 잃었을 것입니다. 오로지 벗어나고픈 마음밖에 없을 때 미국행은 인생의 분명한 전환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보다야 훨씬 더 지혜로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환경에 발을 내딛는 순간 마음 한 구석에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을 것이고 새 출발에 대한 의지도 다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을 알아 주는 이 없는 곳에서 순간적인 안도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좁디 좁은 사각의 링과 같습니다. 마치 동산 나무 숲 그늘을 찾아 숨어들어갔지만 모든 것을 들킨 아담처럼 도망자에게는 숨을 곳이 없습니다.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전 세계가 지구촌이 되어 있는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있었던 나의 사건은 거의 동시대에 이쪽의 사람들도 알고 있는 사실이 됩니다. 몇 단계만 거치면 서로 다 알 수 있다는 인간관계의 법칙도 나의 행적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요. 숨기고 싶은 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피할 곳 없는 이 세상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자유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그 문은 다른 곳에 있지 않고 그가 피하려고 하는 그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그를 추적하고 심판하고 징계하려는 사람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폭풍의 핵 속에 고요가 있듯이 징계자의 분노 한복판에 관용의 세계가 있습니다. 고로 도망의 길을 돌이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심판자의 심장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안에서 용서라는 비상구를 찾아야 합니다. 용서는 도망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심판하는 이의 가슴속으로 들어가야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용서의 문이 아무렇게나 열리는 것은 아닙니다. 진실과 통회라는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그 열쇠를 공의라는 자물쇠 안에 집어넣으면 전혀 보이지 않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문이 서서히 열리게 됩니다. 더 이상 도망자로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을 숨기려 또 다른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유!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분노의 파도가 주는 두려움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을까요? 물론 그 두려움은 근거 있는 두려움입니다. 하지만 분노만 보지 말고 분노와 함께 있는 감정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분노하고 싶지 않은 감정입니다. 분노와 분노하고 싶지 않은 감정은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함께 있습니다. 분노와 함께 붙어 있는 분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로 믿고 꼭 붙잡으십시오. 그 믿음 위에 용기를 내서 도망의 발걸음을 멈추십시오. 심판하는 이들을 향해 진실하게 용서를 구해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삶은 희망을 찾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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