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게 되면 지도교수가 붉은 펜으로 삭제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가장 많은 것이 ‘절대로’‘완전히’‘결코’‘오직’‘최고의’‘가장’그런 부류의 것들입니다.
  부흥집회를 하게 되면 강사의 취향을 물어오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목의 크기를 묻는 것은 와이셔츠를 준비하기 위함입니다. 허리 사이즈를 묻는 것은 내복을 마련하기 위함입니다. 음식 성향을 묻는 것은 대접하기 위함입니다.

  부산 어느 교회에서 집회할 때에는 열다섯 번 정도 식사인데 열 번이 복어집이었습니다. 바로 그 교회보다 앞서 집회했던 교회에서 복어국을 좋아한다는 정보를 얻어냈답니다. ‘야베스의 기도’(대상 4:10)를 설교하면서 ‘복 위의 복’을 받으려면 복어국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우스개로 한 말 덕택입니다. 하여튼 복어를 실컷 먹었지만  ‘오직 복어’로만 식사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교회생활에서도 ‘오직’이라든가 혹은 ‘무엇 무엇만’이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교회개혁가들인 루터, 칼뱅, 츠윙글리 등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3대 오직을 외쳤습니다만 지금은 ‘오직’이 훨씬 많아졌습니다. 

  오직 하나님,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 오직 예수, 오직 성령,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우리 교회, 오직 기도, 오직 말씀, 오직 구원, 오직 사랑, 오직 소망, 오직 선교, 오직 예배, 오직 주일 성수, 오직 십일조, 오직 십자가, 오직 전도....
  사실 ‘오직’이라는 말을 쓴다면 ‘오직 하나님’뿐이어야 합니다. 가정생활에서도 직장생활에서도 하나님 앞에만 ‘오직’을 붙여야 합니다. 오직 부모, 오직 남편, 오직 아내, 오직 아들, 오직 딸, 오직 돈, 오직 복권, 오직 관광... 말은 그렇게 쓰더라도 뜻은 그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혼란이 많은 것은 ‘오직 은혜, 오직 믿음’(sola gratia, sola fide)입니다. 오직 은혜라 함은 우리들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 결정과 행동에 의하여 실현된다는 뜻입니다. 오직 믿음이라 함은 구원은 전적으로 사람의 결단에 달려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혼란이 오고 논쟁이 불길처럼 일어납니다. 오직 믿음이라면 오직 은혜는 없어져야 하고, 반대로 오직 은혜라면 오직 믿음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바로 성경을 수학적 논리로만 푸는 데 있습니다. 은혜가 100%라면 믿음은 0%, 믿음이 50%이면 은혜도 50%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성경적 진리는 수학적 원리로 풀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의 싸움은 은혜도 100% 믿음도 100%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하신 하나님이시면서 온전하신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구원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50% 하나님 50% 사람이 아니시고 100% 하나님, 100% 사람이십니다. 역설적 진리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100% 사랑하면 배우자, 부모, 자녀를 33.3%씩 사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모두를 각각 100% 사랑하게 됩니다. 성경적 진리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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