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하고 나면 몇 년 정도 선교지에 가서 선교사님들을 도우며 살다가 오는 것이 꿈이라고 말씀하시는 성도님이 계십니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들은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칭찬의 말을 합니다. “너무 멋진 생각이세요. 존경스럽습니다.”사람들은 그분의 믿음을 높이 평가합니다. 아마 그가 자신의 비전을 반복하여 선포하고 기도하며 준비한다면, 언젠가 우리는 선교지에서 봉사하고 있는 그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전보다 선교에 대해 적극적인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아서 목회자로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자기계발강사들이 하는 말을 빌려서 이렇게 말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몇 년 후에 하고 싶은 그 일을 지금 바로 하세요”라고. 지금 여기서 선교사처럼 살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에 의해 이 땅으로 보냄을 받은 선교사들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땅, 내가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선교지요, 선교의 대상들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속에 이 땅으로 보냄 받은 자들입니다. 어쩌다가 미국이라는 곳에 와서 살게 되었는지 사연은 다 다르겠지만, 하나님의 섭리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 이곳에 와 있는 선교사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선교사의 영성을 가지고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선교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디로 파송되었는가, 파송을 언제 받았는가가 아닙니다. 그를 보낸 파송단체의 뜻을 정확히 알고 그 사명의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이 아닌 보내신 분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의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열정으로, 자기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선교적 삶이란 무엇일까요? 만약 당신이 어떤 선교사 후원에 동참하고 있다면 마음속에는 그 선교사에게 기대하는 모습들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슨 사역을 해야 하며 언제까지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 등. 후원 선교사에게 기대하고 있는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행하며 사는 것이 선교적 삶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선교적 존재입니다. 예산의 25%를 선교하는 데 사용하는 교회가 아니라 100% 선교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선교에 대한 꿈을 가지고 사느라 현재의 삶을 외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치 영적 도피처나 명예직으로 선교를 생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면 감동도 없고 마음도 불편해집니다. 단지 목사라고 해서 존경받는 시대가 지났듯이, 선교사라는 이유만으로 위대해 보이는 시대도 지나고 있습니다. 어떤 목사, 어떤 선교사인가를 점검해야 하는 시대에 있습니다. 아프리카나 이슬람권만을 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서 있는 곳에서 100% 선교적 삶을 사는 것도 이미 파송받은 우리가 가져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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