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수련회에서 하는 의식 가운데 가끔 촛불의식을 할 때가 있습니다. 초는 분위기를 차분하게 하고 어둠을 밝힌다는 의미 때문에 헌신을 결단하는 순간에 잘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청년부를 섬길 때의 일이었습니다. 수련회 중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주제는 결단과 헌신이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은혜로운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진행팀은 초를 준비하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참가자들은 그것으로 무엇을 할지 아는 듯했습니다. 모든 것이 엄숙하면서도 뜨겁게 진행되었습니다. 함께 통성기도를 드리고 나서 촛불에 불을 붙이며 헌신의 노래를 할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결정적인 순간에 깨달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불을 붙일 라이터를 준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진행팀은 당황했고 불을 구해올 때까지 인도자는 찬양과 기도를 더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불을 가진 사람을 찾았지만 교회 다니는 사람에게 라이터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 보는 것도 조심스런 일이었습니다. 그때만큼 라이터 가진 사람이 아쉬웠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준비되어 있어도 결정적인 것 하나가 빠지면 모두 허사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과 목회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그것은 바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입니다. 예수 승천 이후 제자공동체는 맛디아를 선출하여 12라는 교회의 수를 완성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배를 건조하여 도크에 전시해 놓은 것과 같습니다. 배는 바다로 나아가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를 향해 항해할 때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가야 할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즉 “움직이게 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바로 성령님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하나님의 생기가 임하지 않으면 단지 흙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회의 외형을 갖추었다고 해도 성령의 임재가 없으면 단지 제도와 조직일 뿐입니다. 성령이 없으면 뭔가를 할 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향도 잡지 못합니다. 뭔가를 한다 해도 의미있는 열매가 맺힐 수 없습니다. 부모의 교훈도 자녀에게는 잔소리로 들리게 되고, 열심히 수고하여도 하는 일이 모두 허사가 될 뿐입니다. 때문에 성령의 임재는 인생의 의미와 풍요를 위한 결정적인 요인인 셈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언제 임했는가를 보니 기도하는 때였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는 믿음의 행동이었습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필요를 느낀다는 뜻이고 그 필요를 스스로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고백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아! 이제 다시 깨달았습니다. 마음이 가난해지지 않고는,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지 않고는 성령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성령이 돕지 않으시면 모든 것은 헛될 수밖에 없지요. 기다림의 자세, 가난한 마음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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