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가다 기분이 좋아서 또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평소에는 하지 못할 선행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거액이 생길 기회를 양심에 따라 포기한다든지 아니면 생활비를 아껴서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경우입니다. 불의한 일을 하는 사람을 물리치고 약자를 도와 주는 것도 같은 경우에 해당합니다. 그런 일을 하고 나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스스로가 대견스럽기까지 합니다. 자신 때문에 사회가 더 밝아진 것 같고 하나님께도 칭찬을 들을 것 같아서 기쁨이 충만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가을 바람의 낙엽 같습니다. 그 기쁨이 그리 오래가지 않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곧 이어 찾아오는 다른 생각 때문에 조금 전의 보람이 연기처럼 사라지기도 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오만 가지나 된다고 하지요? 그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포기했던 것에 대한 미련 또는 후회입니다. ‘그걸 주지 않고 내가 썼더라면...’, ‘혹시 그 사람을 도와 준 일 때문에 보복을 당하면 어떻게 하지? 괜히 오지랖은 넓어가지고...’라는 생각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마음속에 퍼지면 평화는 사라지고 두려움과 후회에 눌리게 됩니다. 그 정도는 선행을 했을 때 느꼈던 감정보다 더 강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영적 침체로까지 발전하게 되지요. 이때가 바로 격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거봐. 왜 그런 일은 해 가지고...”라든지,“아마 그 일로 인해 원한 맺힌 사람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이라고 하는 것은 공포를 확대시키는 말입니다.

어떻게 격려하면 좋을까요?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셨던 말씀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에는 하나님께서 두 가지 표현으로 아브람에게 용기를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는 너의 방패”라는 표현과 “나는 너의 큰 상급”이라는 표현입니다. “방패”가 주는 의미는 보호하심, 안전일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한 너를 끝까지 지켜 주겠다는 뜻입니다. “큰 상급”이라는 말은 네가 포기한 것 이상으로 갚아 주겠다는 약속일 것입니다. 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손해보기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을 지켜 주고 보상해 주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실제 하나님은 의와 진리로 이 법칙을 지켜오셨습니다. 이 법칙이 지켜지는 사회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회일 것입니다. 정의가 살아 있다면 선을 행한 자가 억울한 일을 겪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처럼 선을 지키려 한 노력이 오해를 받고 그 때문에 어려움에 처하는 경우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단지 과정에 지나지 않아야 합니다. 결국은 보호하심을 입고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이런 것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선행조차도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행한 사람에게 찾아오는 두려움을 덜어 주고 막아 주는 우리의 입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