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래리 크랩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다>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자신에게 일어났던 불행한 일을 소개합니다.  1991년 콜로라도 스프링스 행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737기가 인근 공항에서 추락하여 탑승자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났는데, 저자의 형이 그 비행기를 타고 있었습니다. 형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아서, 처음에는 눈물도 안 나왔습니다. 며칠 지나서 갑작스럽게 서러움이 복받치더니 그렇게도 서럽게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래리 크랩은 자신이 마치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해서 버려진 존재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느껴질 때는 위로가 되기도 하고, 자기 내면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음을 보고 하나님이 그러한 자기 때문에 기뻐하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래리 크랩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 있는 채로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푹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관심을 가지고 살고자 했건만, 실제로는 자신의 관심사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 때문에 더 아프게 울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그가 울면서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당신께로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당신을 알고, 당신의 임재를 의식하고 당신의 사랑을 느껴야겠는데, 정말 꼭 그래야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는 길은 죄다 제게로 돌아오는 길뿐입니다. 당신께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저의 전부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필요한 건 오로지 당신뿐임을 깨달을 만큼, 제가 당신을 충분히 알지 못합니다. 당신을 찾게 해주세요.” 
그때 래리 크랩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말씀이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이었다고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도 히브리서 11장 6절 말씀을 한동안 묵상했습니다. 이 말씀이 제 마음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 말씀에 대해서 분명한 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말씀을 온전히 붙잡지 못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인 삶을 살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조차도 일상적인 삶에 큰 문제가 없을 때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면서, 그 확신 때문에 큰 위로를 받고 삽니다. 하지만 정작 삶의 큰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다르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사업이 잘 안돼서 재정적으로 큰 위기를 당한다거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다거나, 자녀들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거나, 불치병으로 생존의 위기를 겪게 될 때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문제 해결자로만 생각할 때,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우리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쉬이 원망하고, 믿음의 원칙을 포기하기가 쉽습니다.  그만큼 우리의 믿음이 연약한 게지요.

사람들은 상처를 받거나, 큰 어려움에 직면하면 처음에는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분노 합니다.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에 치를 떨기도 하고, 폭력적인 감정을 분출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우울증적인 증세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그런 문제를 야기한 자기 자신에게 분노하고,  결국에는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어나느냐?’고 하나님께 분노하고 반항을 합니다. 신앙 생활을 잘하는 사람들까지도 이런 마음이 들면, 기도부터 안하고 예배도 안 드리고 교회 봉사도 그만두고 결국에는 세상적인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영적인 반항을 하는 겁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분노를 감추고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리를 회복시키는 분이심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시고, 우리가 상실한 것들을 가장 좋은 것으로 보상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결해 보려다 안 되면 상처받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다가 또 상처받고 마침내  분노에 휩싸여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점점 하나님과 담을 쌓게 됩니다. 사실은 그래서 기도를 안하는 것입니다. 해봐야 소용이 없는데 뭐! 하는 생각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큰 상처를 받고, 어려움에 처하게 될 때일수록 우리의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하나님을 향한 무의식의 분노를 끄집어내서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제 자신도 이런 경험 때문에 기도가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그 이유를 살펴 봅니다. 기도가 안 되는 가장 큰 이유가 하나님께 서운한 겁니다. 제 딴에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제대로 안 되고, 전혀 예기치 못한 상처를 받게 될 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서운함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분노가 자리잡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솔직히 하나님께 서운함도 있고, 하나님을 향한 원망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도 하기 싫었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도 제게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습니다. 더 깊이 하나님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을 향한 원망,  하나님을 향한 분노를 끄집어내어 고백하고나니 정말 기도가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회복되고, 마음의 분노가 천천히 녹아 내림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는 말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 봅니다. 우리를 치유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자기를 찾는 자에게 상을 주신다고 하는 믿음입니다. 상을 주신다는 말은 우리의 삶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신다는 말입니다. 사실 이 말씀이 믿어지지 않아서 우리가 상처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만 온전히 믿을 수 있으면 어떤 역경이 와도, 어떤 상처를 받아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모르지만 하나님이 언젠가는 상을 베푸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 지금의 상처와 고난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8: 18). 이 말씀이 우리의 문제의 해결 포인트입니다. 우리의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직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 있을 때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고난과 상처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에 온전한 예배자가 되고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이 바로 이렇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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