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부 어린이들이 부활절 예배의 특별 순서를 맡게 되었습니다.  한 줄로 나란히 서서 2층 본당 예배실로 올라갔습니다.  올망졸망한 아홉 명이 나란히 강단 위에 섰습니다. 그 동안 배운 것을 부모님들께 보여드리게 되어 자랑스럽지만 긴장되기도 했을 텐데 모두들 의젓했습니다.  먼저 성경 구절을 암송하는 순서가 시작되었습니다.  한 명씩 차례대로 자신들이 외운 말씀을 침착하게 잘 감당했습니다.  이제 맨끝에 서 있던 원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암송을 끝낸 옆친구로부터 줄 없는 마이크를 건네 받은 원이는 두 손으로 마이크를 꽉 잡았습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시작 신호를 주자 원이는 “Jesus Loves Me!” 를 큰 소리로, 연습할 때보다 훨씬 더 잘 해냈습니다.  박수 소리가 예배실을 가득 채웠습니다.  순간 원이가 너무 기특해서 “One more time. please!” 했더니 이번에는 정말 자신있는 목소리로 예수께서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심오한 사랑의 고백을 한 번 더했습니다. 대견해 하는 부모님들과 성도님들로부터 다시 한 번 큰 박수를 받으며 스스로도 자랑스러웠던지 씽긋 웃고 있던 원이에게 그날의 일이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귀한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원이는 우리 유치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3살 반) 남자아이입니다.  유치부에 들어온 지 아직 반 년도 채 안 된 것 같습니다. 말을 하려면 혀가 잘 돌아가지 않아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 원이를 보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주일 아침마다 함께 하나님 말씀을 배우며 사랑을 키워 갔습니다.  원이는 아직 성경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지루해 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누나와 형들의 공부에 방해가 될 때도 더러 있습니다. 

어느날 어쩔 수 없이 우리반에서 처음으로 원이가 벌을 서게 되었습니다.  양팔을 들고 한쪽 구석에 서 있어야 하는 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통해서 원이에게 높은 자존감(Self-Esteem)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원이는 노여움을 타거나 울지 않았습니다.  받은 벌을 잘 감당했습니다.  벌은 금방 끝이 났고 곧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 서기 전보다 훨씬 얌전히 앉아 있었습니다.  한 번은 수선을 피우기에 의자를 가지고 내 곁에 와 앉으라고 했더니, 싫다는 내색도 없이 얼른 자기 의자를 들고 내 곁에 와 앉아서 끝날 때까지 꼼짝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날의 모든 순서가 끝나면 칭찬과 격려도 잊지 않고 해줍니다.  그렇게 원이와 나의 관계는 서로 믿어 주는 관계로 조금씩 자라갔습니다. 그간의 일들을 지켜 보며 원이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 또한 크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도 갖게 되었습니다. 

지난 3월, 부활절을 준비하면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구원의 핵심을 이루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에 관한 복음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비롯해 복음서에 기록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밝히 조명해 주는 말씀 구절들을 뽑아 각자 암송할 수 있도록 도우며 연습에 임했습니다.  아울러 죽음을 이기시고 살아나신 승리의 노래도 신나게 배웠습니다.  잘하면 부모님들 앞에서 특별 순서를 할 수도 있다고 부추겨 주면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배웁니다.  실제로 아이들이 많은 분들 앞에서 자신이 배운 말씀의 암송이나 노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그들이 앞으로 세상에서 살아갈 때 필요할 발표력과 자신감을 키우는 좋은 경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원이는 아직 성경 구절을 암송하기가 조금 벅차고 힘듭니다.  그래서 성경 구절 대신에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십니다” 라는 짧지만 심오한 사랑의 고백을 할 수 있게 해주면서 성령님께서 원이를 도와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드디어 부활주일이 왔고 가장 어린 원이는 형과 누나들 못지 않게 훌륭히 자기의 몫을 해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원이 어머니께서 나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원이 때문에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혹시 원이가 강단에서 엄마를 보고 달려 내려 올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들의 자랑스러운 모습을 행여 놓칠세라 살금살금 원이 앞으로 다가가서 귀한 순간들을 카메라에 모두 담았노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원이 어머니께 대답했습니다.“원이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원이와 나 사이에 맺어진 신뢰감이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원이는 하나님의 든든한 장중에 붙들려 있는 아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날 강단 위에 서있던 원이와 나 사이에 시선이 교차되던 짧은 순간의 일을 돌이켜 보며 복음서에 기록된 베드로 사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마 14:30). 제자들이 탄 배가 육지를 떠난 지 한참 후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을 만났습니다.  무서워 떠는 제자들을 생각하시고 예수께서 그들을 향해 물위로 걸어 오셨습니다.  베드로사도가 너무 반가워 예수님을 맞으려고 물위로 발을 내디뎠지만 예수를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바람을 본 순간 무서움에 발이 물속으로 빠져 갔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내니 무서워 말라” 라고 분명히 알려 주셨음에도 예수께 향했던 그의 시선이 빗나간 순간 그의 눈에는 무서운 바람만 보였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물속으로 빠져가던 그를 구해 주셨다고 성경은 말씀해 줍니다. 

그날 원이는 자기 차례가 되자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잡고 똑바로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습니다.  그동안 벌도 준 선생님이었지만 지금 자신을 도와 줄 사람은 자기에게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었고 할 일을 맡겨 준 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을 원이가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그 순간에 자신의 몫을 감당하려면 앞에 서있는 선생님의 시선을 놓칠 수 없다는 절실함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 때문에 바로 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엄마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던가 봅니다. “여든 살 된 노인이 세 살된 손주에게서 배운다” 는 옛날 어른들의 말씀이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유치부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교사인 내가 오히려 큰 은혜를 받는 때가 많습니다. 

부활주일에 예수님의 사랑을 고백한 원이를 통해 나와 모든 성도님들의 마음에도 예수의 그 엄청난 사랑이 새롭게 부활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날 원이가 했던 사랑의 고백이 원이의 가슴에 박혀서 평생에 힘이 되어 주기를 소원합니다.  앞으로 살아 가면서 기쁜 일을 만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찾아 갈 곳은 오직 한 분, 성경 속에 오늘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도우시는 예수님이라는 것을 원이가 꼭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언제라도 예수님만 바라보면 우리의 연약함과 형편을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고도 남을 큰 힘과 용기와 지혜를 넉넉히 주신다는 것을 우리 어린이들이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날 암송했던 말씀이 아이들의 마음에 항상 살아 있어서, 믿고 순종하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그리고 세상 어느 곳에서나 오직 한 분 참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삶으로 증거하는 자아(Identity)가 분명한 예수의 제자들로 자라나기를 소원합니다. (세인트 루이스 소망교회 유치부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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