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거듭남에 대해서는 많이 강조하는데 헌신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거듭남 안에 헌신이 포함될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 거듭난 자임을 자칭하면서 헌신에는 매우 인색한 사람들이 없지 않다. 누구나 시인할 수 있는 일로, 우리 한인들과 외국인들, 특히 미국인들간에 ‘볼런티어’ 개념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외국인들이 하는 ‘볼런티어’ 사역과 우리 사회에서 보여지는 현실에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볼런티어’라는 사역에 익숙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신앙적 차이 때문일까?
‘volunteer’라는 영어 단어는 ‘voluntarism’과 무관치 않다. 둘 다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하는 일이면서도, ‘의무’라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다. 즉 ‘voluntarism’에는 시민의 자발적인 노력, 즉 봉사활동으로 공공복지시설을 유지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여기에는 종교적 헌신도 포함되지만 교육, 병역 등 임의제 혹은 지원제도 포함된다.‘volunteer’ 역시 ‘지원병’ 이나 ‘의용병’의 의미를 담고 있다. 임금이나 대가를 지불하지 않지만, 이들이 없으면 교육이나 병역의 임무 수행이 불가능하며 운영에 커다란 지장을 초래하기에 없어서는 안 될 대상들이다.

성경은‘voluntarism’을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사사기 5장 9절에선 “백성 중에 ‘즐거이 헌신’”하는 것이라고 했고, 역대상 12장 38절에는 “성심으로”받든다는 표현이 나오며, 역대하 17장 16절에는 “즐거이 드린 자,” 그리고 느헤미야 11장 2절에는 “자원하는 자”라는 단어로 쓰여 있다. 여기서 헌신의 대상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며,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가 없어도 성심성의를 다해 온 몸과 마음을 바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러한 헌신의 모습은 남는 여가를 이용하여 해도 그만 아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믿고 마음과 뜻과 생명을 다해 우선적으로 실천하는 모습이다.

사도 바울의 헌신은 우리에게 표본이 아닐 수 없다. 그리스도 예수를 위해 헌신한 그는 우선 다음과 같은 말을 선포한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3-24)고. 맡겨진 사역을 위해 생명마저 귀한 것으로 여길 틈 없이 실천했던 헌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 장면이다. 더 나아가 그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라고 말했듯이,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주의 소유’로 이전하여 살던 그에게는 어떤 기대나 보상이나 대가도 필요치 않았다.

헌신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는 보다 신중하고 성실하게 결정하고 답해야 할 것이다. 우선 헌신해야 할 대상과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헌신은 자신의 생명까지 드리는 심각하고 중대한 사건임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은 아무런 보상이나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일이며, 동시에 온갖 희생이 따르는 팍팍한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좌절도, 낙심도, 고난도, 오해도, 비난도 떨칠 수 없다. 그럼에도 헌신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가 우리를 택하여 세웠기 때문이며, 그를 믿는 자들을 그의 ‘증인’으로 삼았기 때문이다(요 15:16, 행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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