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다른 상황, 다른 시간에 또 다른 지혜자로서 가게에서, 식당에서, 학교에서, 병원에서, 전업주부로서, 세계은행에서, 연방 정부에서, 실리콘 밸리에서, 각 사회의 작고 큰 모든 직업 속에서 전문적으로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모든 신실한 기독인들을 부르고 계시고 그 자리들이 바로 가장 영광스런 자리이며, 참 지혜자의 모습임을 잊어서도 안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부르심(calling)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있는 바로 그 자리가 가장 영광스런 소명의 자리인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교회 신앙의 전통에서 말하는 소명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좀더 확대 해석해 보면, 남녀노소 누구이건 어떤 위치에 있건  내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사랑해 주시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며 나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엄청나게 큰 것을 준비해 주셨고 예비해 주셨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같이 가난한 사람이 뭘? 나 같은 여자가 뭘? 나 같은 말단직원이 뭘? 나 같은 어린 사람이 뭘? 나 같은 평신도가 뭘? 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계획하신 축복의 길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하는 불순종의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의 가치를 스스로가 인정하고 다른 사람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특권입니다. 이것이 내가 기독교인임을 자랑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런 지혜자들이 세상의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때, 또한 하나님의 정의를 그곳에서 실현해 나갈 때 세상은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숭배하며 교회를 동경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가 지혜자의 삶을 추구하면 삶 속에서 사랑하고 따라갈 만한 존경의 대상이 바뀌게 됩니다. 큰 부자나 뛰어난 학자, 방언하는 분, 놀라운 기적의 능력을 가진 분, 놀라운 카리스마의 정치인들이 존경스러운 것이 아니라 가장 평범한 삶 속에서 조화를 이루며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그래서 나를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작은 삶의 주인들이 여러분의 존경하는 대상이 됩니다. 인간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지만 작은 삶 속에서 의미있는 파도를 만들어가는 귀한 지체들을 발견할 수 있고 그들을 더욱 더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그런 존경하는 분들이 몇 분 있습니다. 나이, 성별을 떠나 내게 귀한 영향력을 끼치는 존경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참 가까운 곳에 계신 분들입니다.

이들이 이 시대의 지혜자입니다. 이 땅에 이런 지혜자가 우리로 인해 넘쳐나야 합니다. 또한 이런 지혜자들을 많이 훈련시키고 양육하고 만들어 내는 일이 바로 우리가, 우리 교회가 져야할 책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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