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언약과 헌신(2)

셋째, 결혼생활에서의 헌신은 “부모를 떠날 것”을 요구한다.  미국 가정에서 25-33%의 부부들이 시댁식구들을 포함한 친척들과 심각한 문제들을 경험한다고(McCarthy, 2004)고 하는데 한국이나 이민 가정들에서도 이혼사유가 시댁이나 처가 식구와 연관된 경우가 매우 흔하다. 성경 말씀은 부부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람이 부모를 떠나야 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창 2:24). 자식이 부모를 떠나는 것은 불효라는 인식이 매우 강하고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어떤 다른 가족관계들보다 더 중요시되는 유교 문화 속에서 성장한 한국인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은 여전히 생소하게 남아 있다.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남성들은 여성들과 달리 부모를 떠난 적이 없으며 동시에 효 사상에 대한 철저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여성들에 비해서 이러한 인식이 더욱 강하다. 그러므로 부모를 떠나라는 성경 말씀은 부부중심제가 확립된 서구 기독교 문화 속에서 살아온 서구 가족들에 비교할 때 한국 가족들에게는, 특히 한국 남성들에게는 매우 큰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부모를 떠남은 부모를 소홀히 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헌신과 친밀성의 첫째 대상을 부모에게서 배우자에게로 이전(移轉)함으로써 부부 사이에 부모가 끼어들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전이 일어나지 않을 때 반드시 부부갈등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부부갈등이 일어나면 진정한 효도를 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효도란 부모를 기쁘게 해드림을 의미하는데 어느 부모도 자식들의 결혼생활이 자기들로 인하여 불행해지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 자녀들은 진정한 효를 실천하기 위해서 먼저 부모를 심리적으로 떠나야만 한다.

배우자가 자신의 부모를 떠나지 못해서 생기는 인한 갈등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상담실에서 다음과 같은 호소를 한다. 
“제 남편은 아예 시어머니집에 가서 살아요. 저보고 ‘당신하고 나하고는 앞으로 30년 이상 살 수 있지만 어머니는 10년 이상 못 사시니까 어머니 사시는 동안에는 어머니 위주로 살다가 어머니 돌아가시면 당신 위주로 살겠소’라고 해서 제가 ‘어머니보다 내가 더 먼저 죽을 거예요’라고 말했어요.”최근에는 아내가 친정부모를 떠나지 못하여 생기는 가정불화도 증가하고 있다.
자신이 부모를 떠났는가는 자기 자신보다 배우자가 더 정확히 알고 있다. 필자는 부부 세미나 참가자들에게 이 문제를 물으면 당사자는 부모를 떠났다고 확신을 하고 있는데 배우자는 동의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심지어 이 문제로 다투는 부부들도 있었다.
자식이 부모를 떠날 수 있기 위해서는 부모의 부부관계가 친밀해야 한다. 우리는 주위에서 부부관계의 친밀성이 결여된 부부들이 자식들을 심리적으로 독립시키지 못함을 흔히 목격한다. 이런 경우 어머니들이 아들들을 심리적인 남편으로 여기고 살다가 아들들이 장가를 가면 며느리에게 아들을 빼앗겼다고 느낀다. 그러므로 같은 여성이 딸들에게는 둘도 없이 따뜻한 친정 어머니 역할을 하지만 며느리에게는 혹독한 시어미니 역할을 하게 된다.

한국 교회는 창 2:24의 부모를 떠남의 신학을 젊은 세대들과 노인 세대에게 잘 가르쳐야 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혼전 교육을 반드시 실시해야 하고, 그럴 때 양가 부모도 교육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교회에서 시어머니 교육은 어느 정도 되었는데 장모 교육이 안 되어 문제라는 지적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떠나려고 할 때 어머니가 마치 돌아가실 것 같이 힘들어 하며 심지어 입원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번은 넘겨야 하는 고비이므로 물러서지 말고 매우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배우자와 함께 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부모를 떠났나? 못 떠났으면 어떻게 떠날 것인가?” “내 배우자는 부모를 떠났나? 내 배우자가 어떻게 자신의 부모를 떠나기를 바라나?”

7. 자아의 희생과 섬김(1)

 자아의 희생은 상대방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자신의 요구를 포기하고, 상대방의 유익을 자신의 유익보다 더 중요시 함을 의미한다 (할리, 1997). 그리스도인 부부들은 성서적인 이상적인 부부관계에 근접해 갈 수 있는데, 이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한 자아의 희생으로 가능하다. Browning 팀(1997)이 지적했듯이, 인간은 유한성과 죄의 세계에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의도하셨던 완전한 상호 동등성과 상호 배려에 근거한 이상적인 부부관계를 완전히 이룰 수는 없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이루어진 새 창조도 아직 종말론적 유보 상태에 있으므로 그의 재림 때 있을 완성에 도달하기 전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이 세상의 유한성과 죄의 힘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으며(김세윤, 1995), 따라서 부부간에도 완벽하고 건강한 관계를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통한 자아의 희생으로 그러한 관계에 근접해 갈 수는 있다.

Hays(1996)는 결혼생활을 제자도로 표현함으로써,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삶, 즉 자아의 희생을 요구하는 삶과 연결시켜서 설명한다. 그는 마가복음 10-12장에서 예수님이 자기부인과 십자가를 지심(8:34), 모든 사람의 종이 됨(9:35, 10:42-45),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자기희생적인 결단(9:43-48), 어린아이같이 됨(10:15), 복음을 위해 가족과 소유를 버림(10:29-30) 등의 십자가의 도를 가르치시는 부분에서 갑자기 이혼과 결혼에 관하여 설명하시는(10:2-12) 것은 양식비평적인 면에서나 편집비평적인 면에서 문맥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즉 Hays는 예수님은 결혼을 자아의 희생과 자기부인과 상대방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는 제자도의 한 측면으로 보셨기 때문에 제자의 도를 설명하는 이 부분에서 결혼에 대해서도 다루신 것이라고 설명한다. 기독교 결혼의 핵심은 빌2:7-8에서 명시하듯이 배우자를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고 자신의 뜻을 상대방의 유익을 위하여 포기하고 스스로 자원하여 상대방의 종이 되어 상대방을 섬김에 있다. 즉 기독교 결혼은 매일 매일 자신의 기대와 요구들을 죽이는 훈련과 희생과 자기 부인을 요구하는 데 이것이 비 기독교 결혼과의 차이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