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화엄경에 보면 ‘인드라망’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인드라망이라는 것은 그물로서 씨줄과 날줄이 만나는 곳에 보석이 있고, 이 보석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불교에 대한 지식이 깊지 못해서 ‘인드라망’에 대한 깊은 지식은 없지만 네트워크나 대인관계를 이야기하다보면 이 비유가 참 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와 설교를 하느라 한국에서 무척 분주한 한 달을 지내고 왔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제일 큰 일은 역시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같이 웃고, 울고, 이야기하고, 전화 한 통만으로도 힘이 되고,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참 인간관계는 신비입니다. 아쉬운 것은 한정된 시간 속에서 꼭 찾아뵈어야 할 분들, 만나면 유익한 분들, 만나면 좋은 분들, 만나야만 하는 분들, 만나고 싶은 분들, 또 저를 만나고 싶어하는 분들... 열심히 만나고 다녔지만 결국 다 뵐 수가 없었습니다. 열심히 만나고, 많이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분들은 결국 연락도 드리지 못하고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 많은 분들에게 사랑의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이렇게 많은 분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금 되새기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 깨달음이 있습니다. 한국을 떠나 있으면서 계속 그대로 있을 것 같았던 관계가 예전의 그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관계는 더 깊어져 있는 반면 어떤 관계는 소원해지고, 심지어는 어그러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만남의 횟수와는 달리 깊이 있는 관계들도 있었습니다. 매주일 설교와 목회, 그리고 훈련으로 만났던 사람들이 이제는 잠깐 한번 만나는 것으로 만남의 횟수와는 상관없이 깊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관계는 신비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진행되는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연결고리들을 갖게 되는지, 관계를 만들면 만들수록, 관계를 가지면 가질수록 느껴지는 것은 신비라고밖에는 할 수 없습니다. 이렇듯 연결되어 있기에, 그만큼 간절하기에 관계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를 무겁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부부, 자녀, 직장, 사회, 친구, 교회 등등 많은 관계를 맺는 우리의 일상 속에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 속담 중에 참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단어입니다. 고운 정은 그래도 납득이 가고, 이해가 되지만, 미운 정이라는 말은 정말 예술입니다. 우리 민족이 얼마나 영적 깊이를 가지고 있는 민족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단어입니다. ‘미운 정’ 때때로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이런 미운 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이런 나를 왜 사랑하시는지 말이지요. 결국 하나님과 내가 관계하고 있기 때문에 ‘미운 정’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성경에서 나오는 ‘의인’이라는 단어도 올바르다거나 정의롭다는 의미보다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큰 걸 보면 관계는 정말 신비입니다.
이런 관계가 변화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사랑이 미움으로 바뀌고, 친했던 사이가 소원해지고, 부부가 평생을 같이 한 친구가 되는가 하면, 철천지원수로 바뀌는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요?
관계는 명사가 아닌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관계는 변하는 것입니다. 결혼을 했다는 것은 두 사람이 부부로 살아가기로 작정했다는 것입니다. 부부라는 명사가 아니라 부부가 되어가는 동사적 의미인 것이죠. 너와 내가 친구라면 이것은 이미 친구가 된 것이 아니라 친구로서 의무와 행위를 하기로 약속한 것입니다. 이런 의무와 행위를 지속하지 않는다면 친구라는 관계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보석들을 우리는 어떻게 유지해야 할까요? 의외로 쉽지만 강력한 것들이 있습니다.
작은 관심을 보이는 것입니다. 문득 전화 한 번, 고맙다는 표현 한 번, 얼마나 힘드냐는 공감 한 번이 우리의 관계들을 보석으로 채우게 하는 것이죠. 저는 오늘 이것을 Happy call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오늘도 고마운 분, 보고 싶은 분, 반가운 분, 그리고 미안하고 죄송한 분들에게 전화나 문자라도 해야겠습니다. 내 삶이 행복해지는 비결. Happy 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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